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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다른 공간 안으로' 리움미술관, 공감각적 환경 예술의 기원을 다시 쓰다

여성 예술의 '지워진 역사'를 복원하다
리움미술관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 11인의 공감각적 실험을 다시 쓰다

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리움미술관이 20세기 중반 미술사의 공백을 정면으로 호출하는 대규모 기획전을 선보인다. 오는 5월 5일부터 개최되는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은 오랫동안 제도권 미술사에서 배제되어 온 여성 작가들의 '환경(ambiente)' 작업을 복원·재구성하며, 현대미술의 계보를 근본적으로 재사유하게 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2023년 독일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에서 시작되어 로마 국립 21세기 미술관(MAXXI), 홍콩 M+를 거치며 확장된 국제 순회 프로젝트로, 약 20년에 걸친 연구와 협업의 결과물이다. 미술사가, 보존연구가, 건축가, 그리고 작가 유족이 참여한 다학제적 접근을 통해, 기록 속에만 남아 있던 '사라진 환경'을 실물 규모로 되살려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각별하다.

'환경'은 1949년 루치오 폰타나가 제시한 이후, 관람자가 작품 내부로 진입해 빛과 소리, 색과 공기, 움직임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예술 형식을 의미한다. 이후 ‘설치’라는 용어로 대체되었지만, 그 형식의 급진성과 실험성은 1950~70년대 여성 작가들에 의해 더욱 확장되었다. 그러나 회화와 조각 중심으로 서술된 남성 중심의 미술사 속에서 이들의 작업은 체계적으로 누락되었고, 전시 종료와 함께 해체되는 환경 작업의 특성은 기록의 부재를 낳으며 '이중의 소멸'을 초래했다.

 

전시는 이러한 결락을 보완하기 위해 1956년 일본 구타이 미술전에서 발표된 야마자키 츠루코의 '빨강'에서부터 1976년 베니스 비엔날레 '환경/예술'에 이르는 20년의 시간을 아우른다. 주디 시카고, 리지아 클라크, 라우라 그리시, 알렉산드라 카수바, 정강자, 레아 루블린, 마르타 미누힌, 타니아 무로, 난다 비고, 야마자키 츠루코, 마리안 자질라 등 11인의 작가가 참여하며, 아시아·유럽·남북미를 횡단하는 환경 예술의 다층적 지형을 제시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지점은 한국 여성 작가 정강자의 '무체전' 복원이다. 1970년 전시 도중 강제 철거된 이후 자취를 감췄던 이 작품은, 방대한 사료 조사와 고증을 거쳐 56년 만에 처음으로 재현된다. 정강자는 1960~70년대 '신전동인'과 '제4집단'에서 활동하며 신체와 행위를 매개로 예술의 경계를 확장했던 작가로, 그의 작업은 당시 사회적 억압과 검열 구조를 반영하는 동시에 환경 예술의 급진적 가능성을 드러낸다. 이번 복원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한국 현대미술사의 공백을 메우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또 다른 핵심 작품인 '드림 하우스'는 마리안 자질라와 라 몬테 영이 1960년대 뉴욕에서 구상한 이후, 작가 최정희의 참여로 현재까지 확장된 협업 작업이다. 빛과 사운드가 결합된 이 환경은 시작과 끝이 없는 지속적 시간성을 특징으로 하며, 관람객의 감각과 지각을 장기적으로 변화시키는 몰입적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해당 작품이 아시아 최초로 공개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

리움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복원의 시간'과 ‘지속의 시간’을 병치하는 큐레이토리얼 전략을 제시한다. 한편에서는 역사 속에서 소실된 작업이 고증을 통해 복원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환경이 현재형으로 작동한다. 이는 환경 예술을 과거의 유산이 아닌, 여전히 생성 중인 동시대적 형식으로 재위치시키는 시도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안드레아 리소니와 마리나 푸글리에세는 "환경 예술은 본질적으로 소실을 전제하는 형식이며, 여성 작가들은 그 과정에서 미술사와 장르 양쪽에서 이중으로 소외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이번 전시가 단순한 재조명을 넘어, 미술사 서술의 구조적 편향을 비판하는 비평적 실천임을 보여준다.

전시장에 구현된 작업들은 기존의 감상 방식을 전복한다. 작품은 더 이상 대상이 아니라 환경이 되며, 관람자는 외부의 관찰자가 아닌 내부의 경험자로 전환된다. 알렉산드라 카수바의 유연한 나일론 구조물은 근대 건축의 직선적 질서를 해체하고, 주디 시카고의 '깃털의 방'은 산업적 물질성에 대응하는 감각적 해방을 제시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물질과 공간, 신체와 감각 사이의 관계를 재구성하며, 예술의 경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이번 전시는 여성 작가들을 단순히 재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의 작업 없이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이 설명될 수 없음을 드러낸다"며 "복원된 '무체전'과 지속되는 '드림 하우스'는 각각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간의 구조를 형성하며, 환경 예술을 살아 있는 형식으로 पुन구성한다”고 밝혔다.

'다른 공간 안으로'는 결국 '누가 미술사를 쓰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사라진 작품을 되살리고, 지워진 이름을 호명하며, 감각의 경험을 현재로 호출하는 이 전시는 미술관이라는 제도를 넘어 하나의 살아 있는 환경으로 기능한다. 관람객은 그 안에서 예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 속에 들어가 새로운 감각의 질서를 체험하게 된다.

 

한편 이번 전시는 KB금융그룹과 보테가 베네타의 후원으로 진행된다. 두 기관의 지속적인 문화예술 지원은 예술을 공공적 감각의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이번 전시의 취지와 맞닿아 있다.

사라진 환경은 다시 구축되고, 단절된 시간은 현재로 이어진다. '다른 공간 안으로'는 그 사이에서 미술사의 또 다른 가능성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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