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인천 영종도의 복합리조트 파라다이스시티가 또 한 번 예술을 전면에 내세웠다. 숙박과 카지노, 쇼핑과 레저를 결합한 대형 복합공간이 이제는 단순한 소비의 장소를 넘어 예술적 체험을 설계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파라다이스시티는 3월 22일 리조트 내 전시 공간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에서 도쿄와 홍콩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컨템포러리 아트 갤러리 JPS갤러리 주관으로 조&마유미 포티의 《Foti Art World》와 아르 그라쥬의 《Light Woven Through Time》를 동시 개막했다. 한쪽에서는 크롬하츠를 떠받쳐온 서브컬처의 원형적 상상력이 폭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빛과 시간의 흐름이 회화와 공간의 질서를 새롭게 짠다. 서로 성격이 뚜렷이 다른 두 전시는 결과적으로 파라다이스시티가 지향하는 문화 전략의 한 단면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예술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감각으로 지나가고 몸으로 통과하는 경험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조 포티와 마유미 포티라는 이름이 지닌 문화적 함의다. 이들은 단지 작가로만 설명되기 어렵다. 두 사람은 세계적 하이엔드 주얼리·패션 브랜드 크롬하츠의 초기 세계관 형성에 깊이 관여해온 인물들로, 브랜드가 오늘날의 독보적 위상을 갖기 이전부터 그 감각의 핵심을 구축해왔다. 1988년 미국에서 리차드 스타크가 설립한 크롬하츠는 고딕 양식의 장식성, 바이커 문화의 거친 에너지, 록 음악의 반항적 정서, 그리고 수공예에 기반한 장인정신을 결합해 대체 불가능한 럭셔리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대량생산과 빠른 유행이 지배하는 패션 시장에서 크롬하츠는 오히려 느리고 무겁고 불온한 미학으로 자신만의 영토를 세웠고, 그 결과 패션 브랜드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 미학의 중심에 조 포티가 있다. 그는 1990년부터 크롬하츠의 예술적 정체성 형성에 핵심 역할을 해온 아티스트이자 현재 ‘아트 앤 사이언스 디비전’을 총괄하는 인물이다. 조 포티의 작업은 매끈하고 정제된 사치의 언어보다, 오래된 물건과 닳은 표면, 기묘한 수집품, 폐허의 잔상 같은 것들에 더 가까이 닿아 있다. 그에게 예술은 고급스러운 완성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시간과 사물의 흔적을 불러내고 그것들을 다시 기묘한 생명력으로 조합하는 일에 가깝다. 전통적인 의미의 회화나 조각보다는 오브제와 설치, 캐릭터와 서사, 일상과 환상을 뒤섞는 조형적 상상력이 그의 진짜 무대다.
마유미 포티는 이 상상력을 보다 정교하고 강렬한 시각 체계로 변환해온 작가다. 조 포티가 해골 캐릭터나 파격적인 아이디어의 원형을 제안한다면, 마유미 포티는 그것을 그래픽과 디지털 매체, 색채와 구조를 통해 더욱 선명한 이미지 체계로 구체화한다. 직관과 질서, 원초성과 세련됨, 거친 충동과 시각적 설계가 교차하는 이 협업은 단순한 부부 작가의 공동 작업을 넘어 하나의 독립된 예술 세계를 형성한다. 크롬하츠를 떠올릴 때 흔히 먼저 연상되는 은 장식의 십자가, 가죽, 해골, 중세적 문양, 록적 태도는 사실상 이들이 오랜 시간 밀어 올린 시각 언어의 다른 이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 1층에서 펼쳐지는 《Foti Art World》는 바로 이 축적된 세계관을 브랜드의 배경이 아니라 독립된 예술의 전면으로 끌어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공간이 하나의 백색 큐브가 아니라 서사가 살아 있는 무대처럼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곳은 정숙한 감상의 장소라기보다 작가의 머릿속을 입체적으로 통과하는 체험 공간에 가깝다. 골동품과 오래된 수집품, 팝아트적 이미지, 불시착한 UFO를 연상시키는 조형 장치, 만화적 캐릭터, 낯선 오브제들이 서로 부딪히고 겹치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교란한다. 대표 캐릭터인 ‘미스핏’ 시리즈는 그 핵심에 있다. 미스핏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이 세계 전체를 안내하는 주인공이자 관람자의 시선을 흔드는 매개체다.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뒤틀린 이 캐릭터는 아름다움과 기괴함, 유머와 불안, 장난기와 어둠을 동시에 품고 있어 크롬하츠적 감수성의 정수를 압축해 보여준다.
특히 전시 중심부에 배치된 대형 구조물 ‘버드하우스’는 이번 전시를 단순한 진열에서 체험으로 끌어올리는 상징적 장치다. 관람객이 직접 내부로 진입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이 구조물은 ‘보는 자’와 ‘보여지는 것’ 사이의 일방적 관계를 무너뜨린다. 작품의 바깥에 서 있던 관람자는 어느 순간 그 내부로 들어가 작품이 만든 세계에 몸을 맡기게 된다. 이는 최근 동시대 전시가 추구하는 몰입형 경험과도 맞닿아 있지만, 이 전시의 흥미로운 점은 그 몰입이 단지 기술적 장치나 미디어 효과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낡은 물건의 촉감, 오브제의 낯선 배치, 캐릭터의 서사성, 공간 전체를 가로지르는 상상력이 결합해 아날로그적이면서도 강렬한 몰입을 이끈다. 브랜드 세계관의 근원이 미술의 언어로 다시 호출되는 순간이다.
같은 전시장 2층에서는 전혀 다른 결의 감각이 관람객을 맞는다. 아르 그라쥬의 《Light Woven Through Time》는 1층의 팝적이고 외향적인 에너지를 뒤로하고, 보다 섬세하고 명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빛과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한다. ‘아르 그라쥬’는 빛의 이동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작품이 끊임없이 다른 얼굴을 드러내도록 하는 기법이자 개념적 장치로 읽힌다. 여기서 작품은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를 제시하지 않는다. 조명과 이미지가 결합된 화면은 보는 위치와 시간, 빛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고, 관람자는 단 한 번에 완결된 형상을 소유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이 전시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그려져 있는가’보다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가깝다.
이러한 방식은 회화에 대한 익숙한 관념을 흔든다. 전통적인 회화가 정지된 이미지와 구도를 바탕으로 감상을 유도해왔다면, 아르 그라쥬의 작업은 회화를 시간 속 사건으로 바꾸어 놓는다. 작품은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지만, 관람자의 감각 속에서는 계속 이동한다. 빛이 스치는 순간마다 표면은 다른 깊이를 드러내고, 색은 변조되며, 화면은 마치 호흡하듯 미세하게 살아 움직인다. 여기에 음악적 리듬감까지 공간에 스며들면서 전시는 단순히 시각예술의 차원을 넘어 복합 감각의 경험으로 확장된다. 빛과 그림자, 정지와 변화, 이미지와 시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이 전시는, 자극적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오히려 천천히 바라보는 행위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흥미로운 것은 파라다이스시티가 이처럼 대비되는 두 전시를 굳이 한 자리에서 병치했다는 사실이다. 조&마유미 포티의 전시가 외향적 서사, 서브컬처, 캐릭터, 오브제, 체험의 에너지로 관람객을 압도한다면, 아르 그라쥬의 전시는 빛의 변화와 지각의 미세한 흔들림을 통해 내면적 감각을 천천히 열어간다. 전자는 소리와 이미지, 물질과 상상이 들끓는 세계이고, 후자는 침잠과 응시, 시간과 감응의 세계다. 그러나 이 상반성은 오히려 전시 전체를 풍부하게 만든다. 감각의 밀도는 다르지만, 두 전시 모두 ‘예술은 어떻게 경험되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만난다. 관람객은 1층에서 상상력의 충돌을 통과한 뒤 2층에서 빛의 결을 따라 호흡을 늦추며, 서로 다른 감각의 리듬을 몸 안에서 비교하게 된다. 한 전시가 다른 전시를 설명하지는 않지만, 나란히 배치될 때 각자의 성격은 더욱 또렷해진다.
파라다이스시티가 최근 보여주는 행보를 돌아보면, 이번 기획은 단발성 이벤트라기보다 공간 정체성에 대한 지속적 실험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복합리조트가 관광과 오락을 넘어 문화적 목적지가 되기 위해서는 일회성 볼거리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술 콘텐츠는 이제 공간의 이미지를 규정하고, 방문 이유를 만들어내며, 체류 경험의 질을 바꾸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대중성이 높은 브랜드 서사와 실험적 예술 형식을 동시에 포섭하며 폭넓은 관람층을 겨냥한다. 크롬하츠라는 이름이 지닌 문화적 인지도를 통해 문턱을 낮추면서도, 그 내부에는 조형적 실험과 감각의 확장을 배치해 예술적 밀도를 확보하는 전략이다.
파라다이스시티 관계자는 “섹스 피스톨즈, 건스 앤 로지스, 레니 크래비츠 등 록스타는 물론 칼 라거펠트 등 패션 셀럽들로부터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크롬하츠 브랜드의 세계관을 예술적으로 조망하고, 동시에 선구적인 아르 그라쥬 기법의 작품을 다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며 “서로 다른 콘셉트의 두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풍부한 감각적 만족과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선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번 전시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동시대 예술은 더 이상 하나의 장르나 하나의 형식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브랜드의 미학적 기원을 파고드는 서브컬처적 상상력도 예술이 될 수 있고, 빛과 시간의 흐름을 직조하는 감각적 실험 역시 예술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얼마나 새롭게 감각을 흔들고, 익숙한 인식의 틀을 벗어나게 하느냐다. 파라다이스시티의 이번 기획은 바로 그 지점에서 유효하다. 한쪽에서는 반항과 장인정신, 캐릭터와 오브제가 뒤엉킨 세계가 펼쳐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빛과 시간이 조용히 이미지를 다시 쓴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한 두 전시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오늘의 예술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가 아니라, 우리 안의 감각을 어떻게 다시 깨우는가. 파라다이스시티는 그 질문을 두 개의 전시로 응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