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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길 위에서 마주한 찰나의 생명'... 현대화랑, 사진가 송영숙 'Meditation on the Road 길 위에서' 개인전 개최

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도시의 골목길, 길가에 무심히 피어난 들꽃, 이름 모를 풀과 생명체들. 길 위에서 마주한 작은 풍경들이 한 작가의 오랜 시선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사진가 송영숙의 개인전 《Meditation on the Road 길 위에서》가 3월 7일부터 3월 31일까지 현대화랑에서 열린다. 전시는 작가가 길 위에서 마주한 세계를 꾸준히 기록해온 작업 세계를 조망하는 자리로, 사진과 회화가 교차하는 독자적인 미학을 보여준다.

 

송영숙은 오랜 시간 길 위의 풍경을 관찰해온 작가다. 그가 카메라로 포착하는 것은 거창한 장면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기 쉬운 순간들이다. 길가에 피어난 야생화, 빛이 스치고 지나간 도시의 한 모퉁이,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과 같은 장면들은 그의 카메라를 통해 고요한 명상적 풍경으로 변모한다.

 

특히 작가는 꽃이 만개했다가 사라지는 찰나의 시간을 포착해 그 순간을 이미지 속에 붙잡아 둔다.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의 흐름은 곧 작가가 살아온 삶의 시간과도 맞닿아 있다. 자연의 변화와 소멸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존재의 덧없음과 시간의 흐름을 사유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사진 위에 유화 물감을 덧입히는 독특한 작업 방식이다. 작가는 인스턴트 컬러 필름 위에 직접 유화 물감을 올려 촬영 당시의 빛과 공기, 그림자의 감각을 다시 살려낸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포착한 현실의 순간에 회화적 감각을 더함으로써, 하나의 이미지 안에서 시간과 감각이 다시 층위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색채 보정이나 장식적 개입이 아니다. 촬영 당시의 시간대와 빛의 밀도, 공기의 온도를 기억 속에서 다시 불러내며 이미지 위에 색을 더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사진이 기록한 현실의 순간을 다시 해석하고, 보는 위치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세계의 미묘한 진실을 드러낸다.

 

이러한 작업 방식의 출발점은 1980년대 작가가 사용하던 폴라로이드 필름의 단종에서 비롯됐다. 당시 그는 즉석에서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는 Polaroid SX‑70 필름을 사용해 풍경의 인상을 즉각적으로 표현했다. 이 필름은 내부에 현상 물질이 두텁게 내장되어 있어 촬영 직후 유제를 밀어내는 방식으로 이미지에 직접적인 개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SX-70 필름이 단종되면서 동일한 방식의 작업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작가는 이를 대체할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인스턴트 컬러 필름 위에 직접 유화 물감을 덧입히는 현재의 작업 방식을 발전시켰다. 이 실험은 사진의 물질성을 확장하는 동시에 회화적 개입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작업 방식이 집약된 작품들이 대거 공개된다. 유제를 입힌 필름 원본 약 250점과 함께 이를 대형으로 확장한 작업들이 동시에 선보인다. 작은 필름 속 이미지에서 출발한 풍경은 확대된 화면 속에서 또 다른 감각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전시는 두 공간에서 나누어 진행된다. 현대화랑에서는 필름 원본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이미지 표면에 남은 유화의 마띠에르와 섬세한 터치감, 사진 표면의 물질성을 밀도 있게 감상할 수 있다. 작은 화면 속에서 색과 질감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변화는 작가가 시간의 감각을 어떻게 이미지로 번역하는지를 보여준다.

 

또 다른 전시 공간인 한미 C&C 스퀘어 갤러리에서는 이미지를 구조물 형태로 세운 대형 설치 작업이 선보인다. 중심을 기준으로 대칭적인 질서를 이루며 만다라를 연상시키는 파사드 구조로 설치된 작품은 이미지 자체가 하나의 공간처럼 인식되도록 만든다. 관람자는 작품 사이를 걸으며 작가가 바라본 세계의 시점과 공간감을 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 전시는 단순한 사진 전시를 넘어 이미지와 공간의 관계를 새롭게 탐구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사진 속 풍경은 평면의 이미지를 넘어 건축적 구조와 결합하면서 하나의 공간적 경험으로 확장된다. 이는 작가가 바라본 세계를 관람자가 직접 거닐며 체험하도록 만드는 장치다.

 

한편 한미 C&C 스퀘어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전시는 6월 28일까지 이어진다. 전시 개막과 함께 발간되는 도록에는 작가의 작업 세계 전반을 조망할 수 있는 자료가 수록됐다. 서로 다른 시기와 장소에서 촬영된 이미지들은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기보다, 오랜 시간 축적된 시선의 흐름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읽힌다.

 

또한 최봉림 뮤지엄한미 부관장의 비평문이 수록되어, 송영숙 작업의 미학적 의미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작업 방식이 동시대 이미지 예술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비평적 시각을 제시한다.

 

송영숙은 1969년 숙명여자대학교 재학 시절 교내 사진 동아리 ‘숙미회’ 활동을 계기로 사진 작업을 시작했다. 같은 해 새한살롱에서 열린 첫 전시 《남매전》을 통해 작업을 발표했으며, 1980년 개인전 《폴라로이드 SX-70》을 통해 일상 속 감정을 담은 실험적 사진을 선보였다.

 

이 전시에서 그는 사진의 사회적 기록 기능을 넘어, 작가의 내면과 감성을 드러내는 이미지 작업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이후 출판문화회관, 공간화랑, 파인힐 갤러리, 아트파크 등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하며 자신만의 사진 세계를 꾸준히 구축해왔다.

 

한편 이번 전시는 길 위에서 마주한 풍경을 통해 시간과 존재의 감각을 사유해온 한 사진가의 오랜 여정을 보여준다. 순간의 이미지를 붙잡으려는 그의 시선은 결국 사라지는 시간 속에서 삶의 흔적을 기록하려는 태도와도 닮아 있다.

 

길 위에서 시작된 작은 풍경들은 그렇게 작가의 손을 거쳐 또 하나의 명상적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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