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 한국과 프랑스가 수교한 지 140주년을 맞아, 두 나라의 문화 교류를 기념하는 대규모 전시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막을 올린다. 오는 9월 20일부터 2026년 1월 25일까지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세잔, 르누아르》가 그 주인공이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국립 미술관인 오르세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이 손잡고 마련한 행사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오랑주리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들을 직접 선보인다. 지난 2016년 《오르세 미술관전》 이후 10년 만에 열리는 프랑스 국립미술관 특별전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전시는 인상주의의 황금기 속에서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두 거장, 세잔과 르누아르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르누아르는 화사한 색채와 부드러운 붓놀림으로 일상의 순간을 따뜻하게 포착하며 인간적 온기를 담아냈다. 그의 화폭 속 인물들은 감각적이고도 친밀한 분위기를 풍기며, 빛과 공기의 떨림이 은은히 배어 있다. 반면 세잔은 치밀한 색면과 견고한 터치를 통해 사물의 구조와 질서를 탐구했다. 전통적 원근법을 해체하며 새로운 공간 감각을 제시한 그의 회화는 20세기 현대미술의 토대를 마련했다.
두 화가의 궤적은 분명히 달랐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시대를 넘어선 예술적 탐구 정신이다. 그리고 그들의 유산은 피카소를 비롯한 후대 거장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피카소는 세잔의 작품에서 입체주의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르누아르의 인물 표현에서는 고전적 아름다움의 새로운 가능성을 읽어냈다. 이번 전시가 세잔과 르누아르뿐만 아니라 피카소의 작품까지 함께 소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시는 두 거장이 공유한 관심사를 중심으로 총 6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 Section 1. 야외에서
두 화가는 1874년 첫 인상주의 전시 이후 끊임없이 야외로 나가 변화하는 자연과 빛을 탐구했다. 르누아르는 부드러운 붓질과 따뜻한 색채로 감각적 풍경을 담았고, 세잔은 견고한 형태와 구조적 질서를 강조했다
■ Section 2. 정물에 대한 탐구
르누아르는 정물을 통해 색채의 조화와 일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했으며, 세잔은 형태와 공간의 본질을 탐구하며 회화의 근본 원리를 새롭게 정의했다.
■ Section 3. 인물을 향한 시선
르누아르는 사랑스러운 곡선과 풍부한 색채로 인물의 친밀한 순간을 담아냈다. 세잔은 감정의 과잉을 배제하고 구조적 일관성에 집중하며 인간의 본질을 탐색했다.
■ Section 4. 폴 기욤의 수집
프랑스의 저명한 수집가 폴 기욤은 세잔과 르누아르뿐 아니라 마티스, 피카소의 작품을 모으며 시대를 아우르는 방대한 컬렉션을 구축했다. 그의 수집품은 오늘날 오랑주리 미술관의 핵심인 ‘발테르–기욤 컬렉션’으로 계승되었다.
■ Section 5. 세잔과 르누아르
두 화가의 직접적인 비교가 이루어지는 핵심 섹션이다. 풍경, 정물, 인물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회화적 접근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 Section 6. 두 거장과 피카소
마지막 섹션에서는 세잔과 르누아르가 남긴 예술적 유산이 피카소와 20세기 미술에 어떤 궤적을 남겼는지를 보여준다.
예술의전당은 이번 전시를 단순한 감상에 그치지 않고 이해와 교육의 장으로 확장했다. 평일 하루 두 차례(11시, 13시) 전문 해설이 진행되며, 오디오 가이드도 제공된다. 어린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예술의전당 어린이아카데미’, ‘미술관 이야기’, ‘생각하는 박물관’ 등이 함께 운영돼 가족 단위 관람객에게도 좋은 기회가 된다.
특히 개막 전날인 9월 19일 오후 2시에는 오랑주리 미술관 큐레이터 세실 지라르도가 직접 전시 의의를 설명하는 특별 강연이 열린다. 사전 예약을 통해 선착순 80명이 참여할 수 있는 이번 강연은 전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명작을 감상하는 자리를 넘어, 양국의 문화 외교사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886년 수교 이후 140년 동안 이어져 온 한·불 관계는 정치와 경제를 넘어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서 더욱 깊은 교류를 이루어 왔다. 특히 한국에서 프랑스 인상주의와 그 이후의 현대미술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은 미술사적 의의와 함께 국제적 교류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또한 전시는 서울을 찾는 해외 관광객에게도 강한 매력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세잔과 르누아르, 피카소라는 이름만으로도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발길을 끌 수 있는 이번 특별전은 국내 문화예술계에도 적지 않은 파급력을 남길 것으로 기대된다.
세잔과 르누아르, 그리고 피카소로 이어지는 이번 특별전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격동의 미술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인상주의를 넘어서 현대미술의 문을 열었던 거장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이는 순간, 관람객들은 단순한 미술 감상을 넘어 시대의 호흡과 창조적 열정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전시는 내년 1월 25일까지 계속되며, 예술의전당 홈페이지와 주요 예매처에서 입장권을 구할 수 있다.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적 우정을 예술로 확인하는 이번 특별전은 서울 가을·겨울 전시 시즌의 하이라이트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