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서울 선정릉에 위치한 전시공간 아트큐브 2R2(대표 홍지숙)에서 작가 오지윤의 개인전 '존엄: 축적된 시간(Dignity: Accumulated Time)'이 오는 4월 24일 개막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랜 시간 천착해 온 '존엄' 연작을 중심으로, 물질과 시간, 그리고 반복적 행위가 어떻게 하나의 회화로 응축되는지를 밀도 있게 조망하는 자리다. 특히 국제 미술계 최대 행사 중 하나인 베니스 비엔날레와 같은 시기에 맞물려 개최된다는 점에서,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국내에서 실시간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전시로 주목된다.
오지윤의 회화는 단순한 이미지의 생산을 넘어선다. 그의 작업은 한지, 숯, 금, 진주 등 물성이 상이한 재료들을 화면 위에 겹겹이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질적인 재료들이 서로 충돌하고 스며드는 과정 속에서 화면은 단일한 색면으로 수렴되지만, 그 내부에는 수많은 시간의 흔적과 물질적 층위가 공존한다. 작가는 수만 번에 이르는 붓질과 장시간의 제작 과정을 통해 회화를 완성하는데, 이 반복적 행위는 단순한 노동을 넘어 일종의 수행적 과정으로 기능한다. 결과적으로 완성된 화면은 '그려진 것'이라기보다 '쌓인 것'에 가깝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회화를 시간의 매체로 전환시킨다. 일반적으로 회화가 하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이미지라면, 오지윤의 작품은 수많은 시간의 축적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화면 위에 남겨진 흔적들은 특정한 서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물질의 밀도와 표면의 깊이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간접적으로 환기한다. 관람자는 작품 앞에서 단일한 이미지를 읽기보다, 층층이 쌓인 시간의 구조를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존엄'이라는 주제 역시 이러한 물질적·시간적 축적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인간 존재는 단일한 순간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감정, 기억이 축적된 결과라는 점에서, 그의 회화는 존재의 본질을 물질적 방식으로 사유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삶의 과정에서 마주하는 번민과 고통, 그리고 그에 대한 연민과 성찰은 화면 위에 켜켜이 쌓이며, 단단한 색면 아래에 잠재된 정서적 깊이를 형성한다. 이때 회화는 재현의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응축하고 드러내는 장으로 기능한다.
이번 전시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국제 무대에서의 작가의 행보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오지윤은 제60회(2024)에 이어 제61회(2026) 베니스 비엔날레에 2회 연속 공식 초청되며 동시대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이번 개인전에서는 비엔날레 출품작과 동일한 '존엄' 시리즈가 국내에 공개된다. 이는 해외에서 형성되고 있는 미술 담론을 시차 없이 공유할 수 있는 드문 기회로, 한국 관람객이 글로벌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장으로 의미를 더한다.
전시는 아트큐브 2R2의 1층 메인 전시장과 지하 공간을 동시에 활용해 구성된다. 서로 다른 공간적 조건 속에서 작품은 각기 다른 호흡과 밀도를 드러낸다. 밝고 개방적인 1층 공간에서는 색면의 확장성과 표면의 질감이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반면, 지하 공간에서는 보다 응축된 분위기 속에서 화면의 깊이와 물질성이 강조된다. 이러한 공간적 대비는 동일한 연작이 지닌 다양한 층위를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하며, 회화를 하나의 공간적 사건으로 확장시킨다.
아트큐브 2R2 홍지숙 대표는 "이번 전시는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과 같은 시기에, 동일한 시리즈를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며 "이미지로는 전달되기 어려운 재료의 질감과 화면의 깊이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오지윤 작가가 오랜 시간 탐구해 온 '존엄'이라는 주제를 집중적으로 조망하는 자리인 만큼, 관람객들이 작품 앞에서 감각의 차이를 직접 체험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존엄: 축적된 시간'은 단순한 전시를 넘어, 회화라는 매체가 어떻게 시간과 존재를 사유할 수 있는지를 묻는 자리다. 반복과 축적, 그리고 물질의 긴장 속에서 구축된 오지윤의 작업은 동시대 회화가 나아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관람자는 화면 앞에서 단일한 이미지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 쌓인 시간과 행위를 따라가며 보다 깊은 차원의 사유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시각적 경험을 넘어, 감각과 인식의 층위를 확장하는 동시대 미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한편 오지윤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회화는 저에게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결과라기보다, 시간을 견디고 쌓아가는 과정 그 자체에 가깝다"며 "수없이 반복되는 붓질과 재료의 축적 속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것은 결국 인간이 가진 '존엄'에 대한 감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보이는 표면은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시간과 감정, 그리고 사유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다"며 "관람객들이 작품 앞에서 그 시간의 밀도와 물질의 깊이를 천천히 마주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에 대해 질문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