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조선의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너무 오래 침묵해 있었을 뿐이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박동훈가에서 열리는 ‘조선시대 나전, 소반, 책반닫이 등 손혜원 컬렉션 공개’전은 오랜 시간 우리 시야 바깥에 머물렀던 한국 전통 공예의 정수를 다시 현재로 호출하는 자리다. 한때 생활의 중심에 놓여 있었지만 산업화와 서구화의 흐름 속에서 점차 주변으로 밀려났던 조선 목가구와 나전 공예가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 세상의 전면으로 올라왔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고미술 전시가 아니다. 그것은 잊혀가던 한국 공예의 가치, 장인의 손끝에서 완성된 조형미, 그리고 생활과 예술이 하나였던 조선의 미의식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리는 현장이다. 화려하게 번쩍이는 과시의 미학이 아니라, 절제와 균형, 재료의 깊이와 시간이 만든 품격이 전시장을 채운다. 조선시대 나전, 유보소반, 책반닫이, 궁중가구 등은 그 자체로 공예품이자 한국인의 삶과 미감을 압축한 문화의 증언이다.
특히 이번 공개전이 주목받는 이유는 ‘손혜원 컬렉션’이라는 이름이 지닌 상징성 때문이다. 국내외에서 수집된 이 컬렉션은 단순히 희귀한 물건을 모은 결과가 아니라, 한국 나전칠기와 전통 목가구의 흐름을 집요하게 추적해온 시간의 축적이다. 수집은 곧 연구였고, 보존은 곧 복원이었으며, 공개는 곧 사회적 환원이었다. 무엇이 비싼가보다 무엇이 한국 공예사의 맥락을 증언하는가에 더 무게를 둔 수집의 태도는 이번 전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이 컬렉션의 가치를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은 이미 한 차례 있었다. 2023년 5월 손혜원 나전컬렉션 가운데 근현대 나전칠기 명품 294점이 목포근대나전칠기박물관 건립을 약속한 목포시에 무상 기증됐다. 조선미술전람회 특선 및 입선 작품, 근대 나전칠기의 대표 작가 전성규 작품, 현대 나전의 명인 김봉룡과 김태희의 주요작, 우리나라 전칠의 선구자 강상원의 작품 등 총 800점 규모의 자료가 공공 영역으로 옮겨가며 한국 나전칠기 연구의 새 기반을 마련했다. 개인의 안목으로 모은 유물이 공적 자산으로 전환된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번 평창동 전시는 그 기증 이후 남아 있던 또 다른 핵심, 곧 조선시대 나전과 목가구의 원형적 아름다움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에 선보이는 조선시대 나전 유물들은 지금까지 대중에게 쉽게 공개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책반닫이는 단순한 수납가구를 넘어 선비 문화의 정신을 담은 기물로 읽히고, 소반은 일상의 식탁이 아니라 조선 생활미학의 축소판처럼 다가온다. 나전의 자개 문양은 빛을 받아 살아 움직이듯 반짝이며, 검고 단단한 칠면 위에서 시간의 층위를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보는 순간 ‘옛것’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압도적 존재감이 밀려온다.

이번 전시의 압권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수집한 부부 유여 컬렉션의 국내 첫 공개다. 특히 18세기 쌍용문 나전칠기 관복함과 나전주련은 국내 최초 공개라는 점에서 미술계와 고미술 애호가들의 시선을 단숨에 끌어당긴다. 해외 경매시장을 거쳐 돌아온 이 유물들은 단지 희귀하다는 차원을 넘어, 한국 전통 공예가 세계 미술시장에서 어떤 위상을 지니는지 보여주는 실물 증거이기도 하다. 동시에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수준 높은 조선 나전 유물을 직접 마주할 기회라는 점에서 전시의 무게감은 더욱 커진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전시가 과거를 박제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오늘의 디자인 감각으로 바라볼수록 조선 공예의 현대성이 더 선명해진다. 균형 잡힌 비례, 기능을 해치지 않는 장식, 재료가 가진 아름다움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절제된 표현은 동시대 디자인 언어와도 놀라울 만큼 맞닿아 있다. 과거의 물건이 아니라 지금 꺼내 놓아도 낯설지 않은 미감, 바로 그 지점에서 조선 나전과 목가구는 다시 살아난다. 전시는 관람객에게 묻는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오래된 물건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깊은 안목 아니었느냐고.
평창동 박동훈가라는 장소 역시 이번 전시에 특별한 호흡을 더한다. 차분한 공간 안에서 마주하는 조선의 나전과 목가구는 박물관 진열장 속 유물보다 훨씬 생생하게 다가온다. 생활공간과 맞닿은 자리에서 전시를 보게 될 때 관람객은 비로소 이 물건들이 원래부터 삶 속에서 사용되던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전시장은 과거와 현재, 수집과 공유, 미술품과 생활기물이 교차하는 현장이 된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한국 전통 공예가 더 이상 일부 애호가의 취향이나 골동 시장의 관심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조선시대 나전과 목가구는 박제된 유산이 아니라, 지금도 새롭게 해석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살아 있는 문화 자산이다. 세계가 한국의 동시대 문화에 주목하는 지금, 오히려 그 뿌리에 놓인 전통 공예의 언어를 다시 읽어내는 일은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개전은 단지 한 컬렉션의 전시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문화의 중심에 놓아야 하는가를 묻는 사건에 가깝다.
한때 조용히 사라지는 듯했던 조선의 빛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자개 한 조각, 목재의 결 하나, 반닫이의 균형 잡힌 구조 속에 숨어 있던 한국적 아름다움은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 또렷한 얼굴을 얻는다. 손혜원 컬렉션 공개전은 오래된 물건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던 문화적 자존심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다. 지금 평창동에서는 조선의 시간이 다시 빛나고 있다.
한편 전시는 3월 21일부터 오는 4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451-4 박동훈가에서 열린다. 오프닝은 3월 21일 토요일 오후 4시이며,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문의는 010-8748-42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