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사진은 어디까지 세계를 담아낼 수 있는가. 혹은, 인간의 시선을 제거한 이후에도 풍경은 여전히 의미를 지니는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을 정면으로 환기하는 전시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가 이경택의 개인전 '무인지대(No man’s land) – Zero point'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3전시실에서 개최 중이다. 3월 18일부터 오는 29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풍경 사진의 전통적 범주를 넘어, 존재와 시간, 인식의 경계를 해체하는 동시대적 시도를 보여준다.
전시장은 무엇보다 '비어 있음'의 감각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 비어 있음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과잉이 제거된 이후에야 드러나는 세계의 본질에 가깝다. 화면 속에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눈 덮인 설원, 황량한 대지, 기능을 상실한 구조물과 잔해들이 정지된 시간 속에 놓여 있다. 이경택은 인간의 흔적만을 남긴 채 인간을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우리가 익숙하게 인식해온 풍경의 구조 자체를 전복한다.
'무인지대'라는 전시 제목은 물리적 공간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 그것은 인간의 개입과 해석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 즉 인식 이전의 세계를 지시한다. 여기에 부제 'Zero point'가 더해지며 전시는 더욱 급진적인 사유의 지점으로 이동한다. 제로 포인트는 모든 의미가 발생하기 이전의 상태이자, 세계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순간이다. 결국 이번 전시는 ‘보는 것’ 이전, ‘이해하는 것’ 이전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탐색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속 풍경은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붕괴된 지점에 위치한다. 사막과 설원 위에 놓인 구조물들은 한때 인간의 목적을 위해 존재했지만, 이제는 자연의 일부로 흡수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은 그것들을 침식시키고, 환경은 그것들을 변형시킨다. 그 결과 인공과 자연의 구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풍경은 인간과 무관한 독립적 존재로 드러난다. 이러한 장면은 인간 중심주의적 세계관을 조용히 해체하는 동시에, 세계가 스스로 존재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이경택의 작업은 형식적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그의 사진은 단일한 순간을 포착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이미지 표면에는 한지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물성이 개입되고, 복수의 시간 층위가 중첩된다. 이러한 방식은 사진을 '순간의 기록'이라는 고정된 개념에서 벗어나게 하며, 시간의 흐름이 응축된 복합적 이미지로 전환시킨다. 관객은 하나의 장면을 바라보면서도 그것이 단일한 시간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이는 사진 매체의 본질에 대한 재고를 요구하는 지점이다.
이번 전시는 또한 이미지 과잉의 시대에 대한 비판적 응답으로 읽힌다. 오늘날 이미지들은 빠르게 생산되고 소비되며, 즉각적인 이해와 자극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경택의 사진은 이러한 흐름을 거부한다. 그의 작업은 쉽게 해석되지 않으며, 관객에게 느린 응시를 요구한다. 화면 앞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미지의 의미는 단일한 방향으로 수렴되지 않고 오히려 확산된다. 이 과정에서 사진은 시각적 정보의 전달을 넘어 사유를 촉발하는 매체로 기능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동시대 미술에서 중요한 담론으로 자리 잡은 '포스트휴먼'적 시선과 깊이 연결된다. 인간을 중심에 두지 않고 세계를 바라보려는 시도 속에서, 이경택은 인간의 부재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의 사진 속 세계는 인간 없이도 충분히 존재하며, 오히려 그 부재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전제를 흔드는 동시에, 새로운 존재론적 시각을 제시한다.
전시의 후반부로 갈수록 작품은 점차 구체적 재현을 벗어나 추상적 양상으로 이동한다. 풍경은 더 이상 특정한 장소를 지시하지 않고, 색과 질감, 흔적의 조합으로 환원된다. 이는 현실의 재현에서 감각과 인식의 경계로 이동하는 과정으로 읽힌다. 관객은 더 이상 장면을 ‘이해’하기보다, 하나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그 상태는 고요하면서도 긴장감이 흐르고,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을 남긴다.
한편 '무인지대 – Zero point'는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인간이 사라진 이후에도 세계는 존재하는가, 의미가 부여되지 않은 풍경은 무엇으로 남는가, 그리고 사진은 어디까지 현실을 담아낼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전시장을 벗어난 이후에도 관객의 내면에 잔류하며,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결국 이번 전시는 풍경을 통해 세계를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인간 이전 혹은 인간 이후의 어떤 지점에서, 이경택의 사진은 조용하지만 밀도 높은 방식으로 관객을 붙잡는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보는 것' 너머의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