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사진도, 영상도, 심지어 전시 도록조차 남지 않는다. 작품은 오직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고, 기억 속에서만 지속된다. 리움미술관이 3월 3일부터 선보이는 '티노 세갈'은 우리가 미술관에서 기대해온 거의 모든 관습을 뒤집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지난 25년간 비물질적 예술 실천을 통해 현대미술의 정의 자체를 확장해 온 티노 세갈의 작업 세계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집중 조망한다. 전시는 전시장뿐 아니라 로비와 복도, 정원까지 미술관 전체 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며, 관객은 '관람객'이 아니라 작품의 구성 요소가 된다.
경제학과 무용을 전공한 세갈은 물질 생산 중심의 예술 개념을 근본적으로 의심해왔다. 그가 만드는 작품은 회화나 조각처럼 남지 않는다. 인간의 신체, 언어, 사회적 상호작용만으로 이루어진 상황 — 그가 말하는 '구성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이 곧 작품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누군가 말을 건다. 혹은 노래를 부르거나 움직인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참여하고, 때로는 침묵 속에 서 있게 된다.

작품은 해석자(Interpreters)라 불리는 수행자와 관객의 만남 속에서 실시간으로 생성된다. 퍼포먼스처럼 보이지만 일회성이 아니다. 미술관 제도 안에서 반복되고 지속되며, 매번 다른 경험으로 갱신된다. 작품은 '형태'가 아니라 '관계'로 존재한다.
세갈의 철학에 따라 이번 전시에서는 모든 촬영과 기록이 제공되지 않는다. 레이블, 월텍스트, 홍보 이미지조차 없다. 관객의 기억만이 유일한 아카이브가 된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 공간 자체와 긴밀하게 결합된다. 특히 장 누벨이 설계한 현대미술관 건축 내부에서 작품은 단순히 놓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동선과 시선 흐름 속에서 발생한다. 관객은 작품을 '보는' 대신 그 안을 통과한다.
총 8점의 구성된 상황이 미술관 입구부터 정원까지 이어지고, 그중 사운드 기반 작품 3점은 일정에 맞춰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전시는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구조를 가진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오귀스트 로댕 조각이 놓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대표작 ⟨Kiss⟩(2002)다. 고전 청동 조각의 영속성과 살아 있는 인간의 움직임이 서로를 비춘다. 조각이란 무엇인가 — 형태인가, 존재인가 — 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또한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비즈 커튼을 통과하는 순간 관객은 작품 안으로 들어간다. 지나가는 행위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며, 관객은 더 이상 외부자가 아니다.
M2 1층에서는 초기작(2000)이 전시된다. 이 작품은 권오상, 알베르토 자코메티, 안토니 곰리, 강서경, 솔 르윗 등 리움 소장 조각 26점과 함께 배치된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이어지는 조각의 역사 한가운데, 물질조차 없는 작품이 놓인다. 세갈의 작업은 조각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한다. "조각이 꼭 물질이어야 하는가?" 관객이 공간 안을 이동하는 행위 자체가 조각적 경험이 되는 순간, 미술의 범주는 다시 정의된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기록한다. 촬영하고 공유하고 저장한다. 그러나 세갈은 기록 대신 현재를 요구한다. 그의 작업은 복제 가능한 이미지 대신 경험된 기억을 우선한다. 이를 그는 '탈생산(de-production)'이라 부른다.
미술관은 더 이상 보존의 장소가 아니라 만남의 장소가 된다. 작품은 소유되지 않고, 기억 속에서만 지속된다.

'티노 세갈'은 단순한 개인전이 아니라 미술관 제도 자체에 대한 실험이다. 작품·관객·기관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고, 예술을 사물이 아닌 사건으로 전환한다. 이번 전시는 오는 6월 28일까지 진행되며, 개막일 오후 2시에는 작가와 리움미술관 김성원 부관장의 토크가 열린다.
한편 이 전시를 보고 나와도 손에 남는 것은 없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오래 남는다.
어쩌면 그것이 세갈이 말하는 가장 완전한 형태의 작품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