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물방울 화가' 김창열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 '물방울, 존재를 묻다'가 전주에서 열린다.
전북 전주에 위치한 전시공간 아트이슈프로젝트 전주(대표 한리안)는 3월 12일부터 5월 31일까지 김창열의 대표적인 물방울 회화를 중심으로 한 특별전 '물방울, 존재를 묻다(Water Drops — A Question of Being)'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에 이어 전라북도 지역에서 처음 선보이는 김창열 개인전으로, 기획자 한리안이 김창열의 '물방울' 회화를 통해 인간 존재와 세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탐색하는 전시로 구성했다.

특히 전시 기간 중에는 세계적인 영화 축제인 전주국제영화제가 함께 열려 전 세계 영화인과 관람객들이 전주를 찾는다. 영화의 도시 전주에서 세계적 한국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이번 전시는 영화와 미술이 교차하는 특별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김창열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화가다. '물방울 화가'라는 별칭처럼 그는 약 반세기 동안 물방울이라는 단일 모티프를 통해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그의 예술은 처음부터 물방울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한국전쟁을 겪은 이후 김창열의 초기 작업은 격렬한 질감과 물질성을 강조한 앵포르멜 추상 회화였다. 전쟁의 상흔과 존재의 불안을 표현한 이 시기의 작품들은 당시 한국 미술계의 실험적 흐름을 대표하는 작업으로 평가된다.

1960년대 그는 뉴욕과 파리에서 활동하며 국제 미술계의 다양한 흐름을 접했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유럽의 실험적 회화 언어를 경험한 그는 회화의 본질과 이미지의 가능성에 대한 탐구를 이어갔다.
그리고 1970년대 파리에 정착한 이후, 그의 예술은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바로 물방울이다. 김창열의 물방울은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다. 캔버스 위에 맺힌 투명한 물방울은 빛을 반사하고 주변을 굴절시키며 실제 물방울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 물이 아니라 안료와 캔버스로 만들어진 회화적 환영이다. 작가는 트롱프뢰유(Trompe-l’œil) 기법을 활용해 물방울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재현하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보고 있다고 믿는 세계와 실제 존재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서 묻게 된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실제인가, 혹은 이미지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시각적 착시를 넘어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이어진다. 김창열에게 물방울은 자연의 한 요소가 아니라 정화와 명상, 그리고 동양적 ‘무(無)’의 사유를 상징하는 이미지였다. 그는 물방울을 통해 세계를 지우고, 동시에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번 전시는 약 20점의 작품을 통해 김창열 예술 세계의 주요 흐름을 조망한다. 1970년대 물방울 회화가 등장한 초기 작품부터 1980년대와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특히 1990년대 작업인 '회귀 回歸(Recurrence)'시리즈의 대형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
이 시기의 작품에서 물방울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철학적 상징으로 확장된다. 한자 문자 위에 맺힌 물방울은 시간과 기억, 반복과 순환의 의미를 담는다. 문자는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의 기호이지만, 그 위에 떨어진 물방울은 그 의미를 흐리게 하거나 다시 보게 만든다. 이러한 화면은 동양적 사유와 서구 회화 기법이 결합된 김창열 예술의 독창성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전주의 문화적 맥락 때문이다. 전시는 전주국제영화제 기간과 맞물려 열린다.매년 봄 열리는 이 국제 영화제는 세계 영화인과 관객들이 전주를 찾는 대표적인 문화 행사다. 영화를 보기 위해 전주를 찾은 관람객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영화가 시간의 예술이라면, 회화는 응축된 순간의 예술이다. 스크린에서 흘러가는 이미지와 캔버스 위에 고요히 머무는 물방울 사이에서 관람객은 또 다른 사유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전주라는 도시가 지닌 문화적 층위 역시 이번 전시에 새로운 의미를 더한다. 한옥과 전통문화, 영화와 현대예술이 공존하는 도시에서 김창열의 물방울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현실과 이미지 사이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한편 김창열의 물방울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화면 위에 맺힌 하나의 질문이다. 빛을 반사하며 맺힌 작은 물방울 속에서 우리는 세계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동시에 아무것도 없는 ‘무(無)’를 마주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관람객이 물방울을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작품 앞에 잠시 머물며 존재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을 경험하도록 한다.
작고 투명한 물방울 하나가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 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묻게 된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