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국보는 언제나 중앙에 있었다. 서울, 수도권, 거대한 박물관의 유리 진열장 속에서 국보는 '보존'의 이름으로 고정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2년, 국보는 움직였다. 그리고 그 이동은 단순한 전시 순회가 아니라, 지역 문화 지형을 흔드는 하나의 실험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발간한 작업노트 '우리 동네에 찾아온 국보'는 바로 그 실험의 전 과정과 고민을 담아낸 기록물이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유홍준)은 지역 간 문화 격차를 완화하고, 박물관의 공공성을 확장하기 위해 추진해 온 '국보순회전' 사업의 기획 철학과 실무 과정을 정리한 단행본 '우리 동네에 찾아온 국보'를 최근 발간했다. 이 책은 2024년 '국보순회전, 모두의 곁으로'와 2025년 '국보순회전, 모두가 함께하는 180일의 여정'으로 이어진 2년간의 여정을 단계별로 기록한 실무 노트이자, 공공 전시의 새로운 모델을 모색한 실천 보고서다.
'우리 동네에 찾아온 국보'는 기존의 성과 보고서와 달리, 숫자를 나열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대신 지난 2년간 '국보순회전'이 남긴 변화의 궤적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사업은 2024년 12개 지역에서 31만7,313명, 2025년 8개 지역에서 14만8,140명이 관람하며 전국 20개 지역, 총 46만여 명의 관람객을 기록했다. 이는 단순한 흥행 수치를 넘어, 지역의 문화 향유 수요가 얼마나 잠재되어 있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지표다.
관람객 설문조사 결과 역시 인상적이다. 응답자의 95%가 전시에 만족을 표했으며, 특히 73%는 ‘진품 국보를 직접 마주한 경험’을 가장 인상 깊은 요소로 꼽았다. 디지털 콘텐츠와 복제 전시가 일상화된 시대에도, ‘실물 유물’이 지닌 감각적·정서적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수치로 확인한 셈이다. 더 주목할 대목은 지역 박물관의 변화다.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은 전년 대비 관람객이 56% 증가했고, 함양박물관은 무려 87%나 늘었다. '국보순회전'이 단발성 이벤트를 넘어 지역 공립박물관 활성화의 촉매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우리는 왜 국보순회전을 시작했을까’와 2부 ‘국보순회전 전시 기획 들여다보기’에서는 사업의 출발점에 놓인 질문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 자원, 접근성의 불평등, 그리고 ‘국보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질문에 대해 '전시를 보여주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지역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핵심 목표로 설정했다. 그 결과, 단순한 유물 대여가 아니라 지역 박물관과의 공동 기획, 운영, 교육까지 포괄하는 협력 구조가 만들어졌다.
특히 장애인·노약자·어린이 등 문화취약계층을 고려한 전시 구성은 이번 사업의 중요한 특징이다. 높낮이를 조정한 진열, 촉각·청각 중심의 콘텐츠, 쉬운 언어로 풀어낸 해설은 ‘모두를 위한 전시’라는 목표를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긴 사례로 기록된다.
3부와 4부는 현장의 고민이 가장 생생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지역 박물관마다 다른 공간 조건과 예산, 인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된 ‘모듈디자인’은 전시 실무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소개된다. 구조물의 재사용을 전제로 한 설계는 비용 절감뿐 아니라 환경적 책임까지 고려한 선택이었다. 또한 전시는 ‘관람’에 머물지 않고 ‘경험’으로 확장됐다. 보고, 듣고, 만지고, 참여하는 교육 콘텐츠는 장애 여부와 연령을 넘어 모두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포용적 체험의 장을 형성했다.
5부와 6부는 '국보순회전'의 또 다른 성과, 즉 ‘협력의 방식’에 주목한다. 국립중앙박물관–소속 국립박물관–지역 공립박물관으로 이어지는 삼각 협력 체제는 기획부터 운영, 평가까지 전 과정을 함께 수행하는 구조로 정착됐다.
책은 관람객 설문과 실무자 심층 인터뷰를 통해, 전시 이후 지역 사회의 인식 변화와 박물관 내부 역량 강화 효과를 함께 분석한다. 국보는 돌아갔지만, 협력의 경험과 운영 노하우는 지역에 남았다는 점에서 이 사업은 하나의 ‘문화 인프라 구축’으로 평가된다.
한편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현장의 고민과 노력을 담은 이 책이 전시 실무를 고민하는 동료들에게는 참고서가 되고, 우리 동네에 찾아온 국보의 이야기가 궁금한 시민과 학생들에게는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기록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 2년간 국보는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 박물관의 역할에 대한 질문도 함께 움직였다. '국보순회전'은 이제 또 다른 지역에서의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며 2026년에도 여정을 이어간다. '우리 동네에 찾아온 국보'는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을 통해 2월 6일부터 무료로 공개된다. 국보가 남긴 것은 전시가 아니라, 지역과 함께 만든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