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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갤러리 마롱, '제1회 똥손들의 반란 展 개최…여행을 사진·그림으로 기록하는 김재영 작가 등 24명 참여

"못 그려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나를 표현하는 용기"
단 하루 3시간의 도전이 만든 '내 생애 첫 그림' 전시

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서울 종로구 북촌로 143-6, 고즈넉한 한옥 길목에 자리한 갤러리 마롱에서 12월 3일(수)부터 7일(일)까지 아주 특별한 전시가 열린다. 이름하여 '제1회 똥손들의 반란 – 내 생애 첫 그림전'.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이 전시는, 평생 그림 한 장 제대로 그려본 적 없던 사람들이 단 하루, 고작 3시간 만에 만들어낸 '기적 같은 작품들'을 정식 갤러리의 화이트큐브에 올려놓는 프로젝트다. 이 전시의 중심에는 감성회화 작가 로사.C(최미진)이 운영하는 '로사의 작업실'이 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단 하루 동안 붓을 처음 잡아본 24명의 '초보 작가들'이 있다.

 

이번 전시는 작품의 화려함이나 기교를 평가하는 장이 아니다. 오히려 "못 그려서 부끄럽다가 아니라, 나를 표현했다는 용기"가 환영받는다. 로사.C는 이 전시를 "완벽함의 기준으로부터 멀어져, 스스로에게 돌아가는 시간"이라고 설명한다.

 

참가자 24명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이름이 있다. 김재영. 그는 기존 예술 활동 경력이 있는 전문 작가가 아니라, 본업을 가진 평범한 '일상인'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사진을 사랑했고, 여행의 순간을 기록하는 방식에 늘 갈증을 느꼈다고 말한다.

 

"사진 속 여행 장면을 한 번쯤은 직접 그림으로 남겨보고 싶었어요. 그게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이 전시가 그 첫 장을 열어준 느낌입니다."

김재영 작가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 역시 여행의 흔적에서 시작됐다. 그는 늘 카메라에 담던 풍경을 처음으로 붓으로 옮기며, "사진에선 지나쳤던 햇빛의 색, 그림자, 공기의 흐름을 다시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로사.C는 김재영 작가의 참여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그의 그림에는 여행자의 시선이 있어요. 사진으로 세계를 담아온 눈으로, 이제는 '나만의 색'으로 풍경을 번역하기 시작한 거죠. 첫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만큼 감성이 선명합니다."

그가 손에 쥔 붓은 서툴렀을지 모르지만, 그가 그려낸 여행의 기억은 누구보다 선명했다. 이 전시는 그가 처음으로 ‘작가’라는 호칭을 얻는 순간이기도 하다.

 

전시 제목은 도발적이다. '똥손들의 반란' — 누가 봐도 '그림에 재능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기획자인 로사.C는 그 안에 ‘반전 메시지’를 숨겨두었다.

"똥손은 손재주의 문제가 아니라,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이 만든 자기 검열이에요. 그 틀을 깨는 순간, 누구나 예술가가 됩니다." 즉, 이 전시는 '재능'보다 '용기'를 응원하고, '완성도'보다 '표현의 진정성'을 기념한다.

 

참가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민경, 김민지, 김성준, 김연임, 김인영, 김재영, 동두봉, 문혜성, 박관진, 신성민, 박철우, 이광준, Aure D., 이정선, 정윤희, 최문광, 최승우, 최원철, 송정림, 최윤하, 최현섭, 한영민, 황선욱, 홍정화 등 총 24명. 각자의 직업, 나이, 삶의 배경은 서로 다르다. 하지만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자기 삶에서 '표현의 순간'을 갖고 싶어 했다는 것.

 

한 참가자는 "캔버스 앞에서 손이 떨릴 정도로 긴장됐다. 하지만 붓을 한 번 내리자 그 떨림마저 내 그림의 일부가 됐다"고 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색을 고르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내가 나에게 선물을 주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작품이 단 3시간 만에 완성된 그림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 '짧은 시간'이 오히려 놀라운 집중과 몰입을 이끌었다.

로사.C는 "3시간은 짧아서 오히려 생각이 너무 많아질 틈이 없다"고 말한다. "기교를 고민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요. 결국 본능적으로 색을 고르고, 감정으로 그리게 됩니다."

 

이 과정은 치유와도 닮아 있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누구에게도 평가받지 않는 공간에서, 오로지 '나의 감정'을 색과 선으로 옮기는 순간. 이것은 단순한 취미 경험이 아니라, 심리적 회복에 가까운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작가 로사.C(최미진)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수학한 감성회화 작가다. 그녀의 작품 속 로사.C는 항상 꽃을 들고 있거나, 생각에 잠기거나, 혹은 소박한 일상의 온도를 담고 있다. 특별히 화려한 장면은 아니다. 그러나 보는 이들은 그녀의 작품 앞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 그림이 거창한 메시지를 담고 있진 않아요. 그저 '오늘은 뭐해?'라고 건네는 작은 안부 같기를 바랄 뿐이죠." 그 따뜻한 정서가 이번 전시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로사의 작업실' 수업은 기술교육이 아니다. 누구든 마음을 색으로 옮길 수 있도록 안내하는 치유 프로그램에 가깝다.

 

전시장에는 전혀 다른 주제와 분위기의 작품들이 한 데 모였다. 해바라기, 벚꽃, 풍경, 바다, 부엉이, 고양이, 기억 속 장소… 각 작품은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닮아 있다.

어떤 이는 어린 시절 바라보던 마당의 해바라기를 그렸고, 어떤 이는 사랑하는 반려묘를 그렸으며, 누군가는 지난 여름 혼자 떠났던 여행의 바다를 그렸다. 김재영 작가는 카메라에 담아온 기억을 처음 붓으로 번역했다.

기교의 차이는 있지만, 감정의 깊이는 모두 다르지 않다. 전시장에 모인 그림들은 '서툰 손의 흔적'이 아니라
'솔직한 마음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오프닝 행사에는 24명의 참가자와 로사.C가 모두 자리한다. 본업에 종사하던 이들이 ‘부캐 작가’로 살아보는 첫날이기에, 그들에게는 그 어떤 전시보다 뜻깊은 순간이 될 것이다. 전시 포스터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당신의 한 붓, 한 색이 모여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아름다운 반란이 됩니다." 이번 전시는 완벽함을 포기한 사람들의 작은 항거이며, 스스로에게 용기를 선물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축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여행을 사랑하고, 사진을 사랑하며, 인생 첫 그림을 통해 새로운 표현의 세계로 들어선
김재영 작가의 반란도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미숙함이 아니라 시작이고, 실수가 아니라 용기다. 그리고 이 작은 용기들이 모여 2025년 겨울, 서울 북촌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시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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