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전주=오형석 기자 | 수백 년간 한국인의 삶과 예술을 지탱해 온 한지가, 오늘의 감각과 언어 속에서 새롭게 피어난다.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의 '우수기획전시 지원사업'에 선정된 기획전 '재생 再生: 한지, 예술로 다시 태어나다'가 지난 10월 14일부터 오는 12월 14일까지 전주 아트이슈프로젝트(대표 한리안)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전통 재료'로 인식되던 한지를, 과거의 유산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예술 매체로 재조명한다. '찢기고, 이어지고, 다시 태어나는' 한지의 물질적 속성은 곧 생명과 예술의 순환 구조를 상징한다. 이 과정에서 전시는 '재생(再生)'이라는 주제를 통해 예술의 근원적 의미, 즉 "무너짐과 회복, 변형과 창조의 반복"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 한지, 전통의 경계를 넘어 예술의 언어로
참여 작가 정진용·김병철·박경덕·정강은 각자의 예술적 언어로 한지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며, 동시대 예술이 직면한 질문—기억, 관계, 시간, 기술, 생태—을 한지 위에 새긴다.
정진용 작가는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 주체성과 인간 감각의 지속성을 한지에 투영한다. 그의 화면에서 한지는 '빛과 어둠, 기억과 소멸'이 교차하는 존재의 피부처럼 드러난다. 김병철은 한지를 언어적 기념비로 확장하며, 오랜 시간의 흔적과 손의 감각이 결합된 조형물로 '기억의 시간성'을 형상화한다.
박경덕은 조각가의 시선으로 한지의 물성을 변주한다. 그는 식물의 성장, 금속의 에너지, 감각의 생태적 교감 등을 주제로, 한지가 지닌 섬유의 결과 생명력을 미시적 생태계의 리듬으로 전환시킨다. 정강은 젊은 세대의 감수성으로 관계의 회복과 존엄의 회생을 주제로 삼는다. 그의 작업은 한지를 매개로 인간 내면의 흔들림을 시각적 퍼포먼스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 지역성과 세계성의 교차, 예술적 ‘재생’의 장
전시는 한지의 도시 전주에서 열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전주는 조선시대 이래 한지의 산지이자, 수백 년의 전통을 간직한 종이 문화의 중심지다. 이번 전시는 그 역사적 맥락 위에 서서, 지역의 전통이 세계적 예술 언어로 확장되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디렉터 겸 아트이슈프로젝트 한리안(Han Lian) 대표는 "한지는 인간의 손과 자연이 만들어낸 유기적 매체다. 이번 전시는 한지가 다시 생명을 얻는 '예술의 재생'을 통해, 기억과 시간, 그리고 인간성의 회복을 함께 묻는다"고 전했다.
■ 한지, 예술로 다시 태어나다
한편 이번 전시는 전라북도의 문화적 정체성과 예술의 동시대성을 연결하며, ‘전통의 물질이 동시대 감각으로 환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한지가 단순한 소재를 넘어, 예술의 본질을 되묻는 철학적 장치로 작용함을 시사한다.
또한 전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중심이 되어 지역예술 생태계의 재생 가능성을 실험한다는 점에서, '재생 再生'은 단순한 전시를 넘어 지역문화의 자생적 힘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