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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화이트 큐브 서울, '에텔 아드난 & 이성자 2인전' "태양을 만나다(To meet the sun)" 개최

화이트 큐브 서울, 2026년을 시작하는 첫 전시로 에텔 아드난 & 이성자 2인전 소개
이주와 망명의 경험 속에서 형성된 두 작가의 작업 세계를 하나의 대화로 조명
철학과 추상을 기반으로 한 우주론적 탐구를 선보여
한국 작가와 해외 작가의 작업을 하나의 장(場)으로 연결하는 화이트 큐브 서울

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화이트 큐브 서울은 새해 첫 전시로 레바논 출신 작가 에텔 아드난(Etel Adnan, 1925–2021)과 재불 1세대 추상화가 이성자(Seundja Rhee, 1918–2009)의 2인전 '태양을 만나다(To meet the sun)'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에텔 아드난의 작품이 한국에서 처음 소개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전시 제목 '태양을 만나다(To meet the sun)'는 에텔 아드난이 1968년 발표한 시에서 가져온 것으로, 인류 최초 우주비행사의 죽음을 기리는 애가이다. 이는 오랜 시간 우주적 세계관을 회화로 확장해 온 이성자의 작업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이번 전시는 회화, 태피스트리, 판화 작업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타향에서 독자적 예술 언어를 구축해 온 두 작가의 작업을 하나의 대화로 엮어낸다. 두 작가는 철학적 사유와 추상, 그리고 1960년대 우주 탐사 열기에 반응한 독창적 조형 언어를 각자의 화면에서 구현해왔다. 

 

이들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주요 모티프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도 닮아 있다. 에텔 아드난은 태양과 달, 타말파이스 산의 실루엣을 반복적으로 등장시키고, 이성자는 지구와 행성계를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구조를 지속적으로 화면에 배치한다. 이처럼 추상의 어법을 빌려 기억과 풍경, 나아가 형이상학적 세계를 구축한 이들의 시도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한 예술적 영감으로 공명한다.

 

 

에텔 아드난은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시기에, 처음 파리를 찾았으나 당시에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았다. 이후 캘리포니아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미국 서부의 빛과 풍경을 색채와 면으로 표현하며 회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발전시켜 나아갔다.

 

1970년대 초 베이루트로 돌아가 활발한 예술·문학 활동을 이어갔지만, 레바논 내전 발발과 함께 또 한 번의 망명을 겪게 된다. 이후 파리에 정착한 에텔 아드난은 이러한 단절의 경험을 기억, 풍경, 형이상학적 사유를 매개하는 절제된 추상 언어로 구현하였다. 캔버스 위 선명한 색면은 빛에 잠긴 듯한 풍경을 만들어내며 저 너머의 또 다른 세계를 암시한다. 이러한 색채 감각은 태피스트리 작업으로도 확장되어 색을 느리고도 촉각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한편 이성자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프랑스로 이주하며 개인적, 역사적 단절을 동시에 겪었다. 세 아들과 헤어진 채 파리에 도착한 그는 전후 남성 중심의 추상미술계 속에서 자신의 예술적 위치를 모색해야 했다.

 

1953년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Académie de la Grande Chaumière)에 입학한 이성자는 서구 모더니즘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파리 생활 초기, 작가는 앙리 괴츠(Henri Goetz)를  비롯한 작가, 교육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서구 미술의 새로운 조류를 가까이 접했고, 이는 그의 표현 언어가 추상으로 이행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흩어진 작은 붓자국과 중첩된 색면은 구상적 모티프를 대체했고, 고향의 기억과 모성의 감각은 기하학적 형태와 화면의 질감 안에 응축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이후 1960년대의 '여성과 대지(Woman and Earth)' 연작으로 이어졌다.

 

전시는 특히 이성자의 1960년대 작업에 주목한다. 이 시기 그의 화면은 안정된 구도 속에서 공간의 확장성을 내포한다. 떠오르는 선, 사각형, 원 등의 원초적 형태는 인체와 지형을 가리키는 동시에 지구의 경계를 넘어선 우주적 질서 속에서 서로 연결되는 듯하다. 균형과 긴장의 상태에 놓인 이 형태들은 서로 충돌하는 힘과 문화적 유산 사이에서 평형을 찾으려는 시도의 출발점이 되었고, 작가의 작업과 예술적 탐구는 이 지점에서 더욱 광활한 지평으로 확장되었다. 

 

1960년대의 달 탐사와 지구를 하나의 행성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은 두 작가에게 중요한 창작적 동력으로 작용했다. 확장된 우주론적 상상력은 에텔 아드난의 글쓰기에 직접적 영감을 주었으며, 회화와 태피스트리에서는 천체 형상이 점차 두드러졌다. 태양과 달을 연상시키는 원형,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사각형, 응축된 색면과 간결한 지평선의 띠 등이 반복해 등장한다.

 

타말파이스 산을 지속적으로 그리던 아드난의 풍경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새로운 구성 방식으로 전환된다. 특히 태피스트리 작업에서는 지평선이 사라지고, 비정형 조각들이 이어 붙은 패치워크 형태가 화면을 채우며 지리적 경계를 암시함과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확장된 공간 감각을 제시한다. 한편 이성자는 이 무렵 이후 1995년부터 2008년에 걸쳐 전개될 ‘우주 시대’ 연작으로 이어지는 개념적 기반을 구축해 나갔다. 이를 통해 그의 예술적 탐구는 대지에서 도시, 하늘을 거쳐 마침내 천문학적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선보이는 에텔 아드난과 이성자의 2인전 '태양을 만나다(To meet the sun)'는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를 거쳐온 두 작가의 작업을 통해 빛과 우주, 그리고 예술이 삶을 관통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사유를 제안한다. 전시는 2026년 1월 21일부터 3월 7일까지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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