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 글래드스톤 갤러리는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의 서울 지점 첫 개인전 《in beauty bright》를 오는 8월 29일부터 10월 18일까지 개최하며 다양한 크기의 신작 풍경화 13점을 소개한다. 캔버스에 수채로 제작된 이번 전시작들은 파스텔 톤의 분홍, 파랑, 노랑, 보라, 초록으로 이루어진 공통된 팔레트를 각기 다른 조합으로 배열한다. 색조합을 제외한 화면의 구성은 13점에 걸쳐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모두 네 개의 선만으로 묘사된 ‘마운틴 레이크’, 일명 산악호수를 표현한다.
전시장의 회색 벽면과 대비되어 더욱 돋보이는 작업의 밝은 색조는 북미권에서 출발하여 서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아 및 아동과 오랫동안 연관되어온 색들을 참조한다. 연분홍과 연하늘은 보편적으로 소녀와 소년의 성별을 상징하는 색으로 통용되어온 반면, 노란색은 아기의 성별을 단정짓지 못할 때의 출생 전 선물에 많이 사용되어왔다. 보라색과 초록색은 오늘날 아이들이 장난감에 흔히 쓰이는 색들로, 이번 전시의 색조합을 완성한다. 이와 같은 색채 선택은 최근 아이를 맞이한 작가의 개인적 삶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1989년 봄을 시작으로 AIDS로 인한 주변의 죽음을 수없이 목도해야만 했던 작가는 그 후 자기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절감해왔다. 이는 작가가 모든 회화에 작품을 완성한 그날의 날짜를 제목으로 붙여온 이유이기도 하다. 론디노네의 회화는 이처럼 시간과 직접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드러내는데, 매 작업에서 드러나는 이 두 가지 요소의 조합은 공간(space)과 시간(time)의 ‘결혼’이라고도 여길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상징하게 된다. 띄어쓰기도 없는 형태로 마치 일종의 주문처럼 늘어져 있는 제목들은 작가가 자란 스위스 중부 루체른 호수 지역의 주된 언어인 독일어로 명시되어 있다. 1964년 이곳에서 태어난 작가는 유년시절을 이 유명한 산악호수가 선사하는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보냈다. 자연과 그것이 가리키는 ‘생명의 세계(world of life)’는 론디노네의 폭넓은 작품세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자연주의(naturalism) 개념 자체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작가는 오히려 자연과 문화를 ‘동등한 무게’로 다루며 이를 정교하게 합성한 모습을 보여준다.
합성(synthesis)은 전시장에 나열된 색의 변주 가운데 개인적 경험과 보편적 감각, 구상과 추상을 통합하는 일종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f)1로 간주할 수 있다. 작가는 산업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색채와 반복적인 화면구성을 직접 손으로 구현하며 ‘대량생산(mass production)’과 ‘수공예(handcraft)’가 합성된 상태 또한 증명한다.
작가의 최근 삶에 비추어보면 아이 역시 부모 간 ‘합성’으로 탄생하듯, 이번에 전시되는 연작 역시 2024년 루체른 미술관에서의 대규모 회고전 당시 공개된 대형 딥틱(diptych)의 ‘자손(offspring)’이라 명명 가능하다. 루체른 시내에서 불과 몇 발자국 떨어진 호수를 정면으로 바라본 전경을 동일한 구성과 주제의 거대한 양면 수채 작업으로 선보였던 론디노네는 낮과 밤을 암시하는 다채로운 파란색을 화면에 배열한 바 있다. 이번 글래드스톤 서울에 전시된 소품들은 반복되고 순환되는 산업적 색채와 각기 다른 크기로 키네틱한 옵아트적 효과를 자아낸다.
높은 채도의 화면들을 바라보다 보면 색면회화(Color Field painting) 중에서도 헬렌 프랑켄탈러(Helen Frankenthaler)의 얼룩회화 기법(staining technique)의 사용을 관찰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미술사적으로 색면회화의 반작용으로 발현되었던 미니멀리즘의 영향이 극도로 절제된 화면 구조에서 여과 없이 드러나기도 한다. 네 개의 선과 그로 인해 생성된 다섯 개의 분할된 화면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대상을 캔버스 위에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화면을 둘러싼 여백은 전통적인 풍경화가 제시하는 일종의 환상에 반기를 든다.
이번 전시를 방문하는 국내 관람객들은 지난해 뮤지엄 산에서 열린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을 떠올리거나, 한국의 유산과 모던한 형태를 합성시키는 단색화와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정제되고 단순한 화면에도 불구하고 각종 미술사조의 여운을 머금고 있는 유쾌한 신작들은 이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현재 마음상태를 반영한다.
■ 우고 론디노네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 1964년 스위스 브루넨 출생)는 오스트리아 빈 응용예술대학교(Universität für Angewandte Kunst)에서 수학한 후 1997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현재까지 그곳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작가는 파리 퐁피두 센터(2003),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2006),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2013), 로테르담 록분드 아트 밴 뷔넝겐(2016), 로마 현대미술관(2016), 프랑스 님 카레 다르(2016), 캘리포니아 버클리 미술관(2017), 신시내티 현대예술센터(2017), 마이애미 배스 미술관(2017), 빈 벨베데레 미술관(2021), 멕시코시티 타마요 미술관(2022), 프랑크푸르트 쉬른 쿤스트할레(2022), 파리 쁘띠 팔레(2022), 베니스 스쿠올라 그란데 산 조반니 에반젤리스타(2022), 제네바 미술사 박물관(2023), 뉴욕 워터 밀 패리시 미술관(2023),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2023), 뉴욕 뉴윈저 스톰 킹 아트센터(2023), 원주 뮤지엄 산(2024), 스위스 루체른 미술관(2024), 독일 쿤첼자우 뷔르트 미술관(2024), 미국 콜로라도 애스펀 미술관(2024)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 글래드스톤 갤러리
글래드스톤 갤러리는 설립 이래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미술을 선보여왔다. 갤러리는 오랜 기간 주요한 주제와 마주하며 동시대적 사회적 화두를 다루는 작가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해 왔다. 뉴욕 본사와 브뤼셀 및 서울 지점에 걸쳐 운영되고 있는 글래드스톤 갤러리는 전 세계를 무대로, 전속 작가들의 작업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고 이로써 그들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또한 글래드스톤 갤러리는 현대미술가뿐만 아니라 미술사적으로 중추적인 예술가들의 유산을 이어가고 그들의 작업이 지닌 가치를 널리 전파해왔다. 글래드스톤 갤러리는 설립자 바바라 글래드스톤의 이념을 기반으로 갤러리의 장기적인 비전과 프로그램을 이끄는 파트너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