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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축구이야기] 축구전술의 역사 - 카테나치오 ①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질문을 해보자.

축구팬에게 가장 싫어하는 전술은?

전세계 축구팬에게 가장 악명을 떨치는 이탈리아의 트레이드마크인 카테나치오다. 

 

원래 이탈리아는 수비가 강한 팀이다.

1934년과 1938년 최초로 월드컵을 2연패할 때부터 이탈리아의 거친 수비는 정평이 있다.

당시 이탈리아의 전술은 메토도라고 한다.

2-3-5 시스템에서 센터하프가 앙쪽 사이드하프의 뒤에, 양쪽 백 앞에 서 있는 전술이다.

1회 월드컵(1930년)에서 아르헨티나 대표로 뛴 몬티라는 선수를 영입해 전술에 중심에 놓은 시스템이다.

이전에 유벤투스에서 사용했고 대표팀에서는 몬티를 영입하면서 이 자리를 맡긴 것이다. 

 

1934년 월드컵에서는 무승부가 없이 무승부일 때는 다음날 재경기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탈리아를 만난 스페인은 첫날 무승부를 치른 이후 재경기에는 상당수 주전이 경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대표적으로 스페인의 골키퍼였던 리카르도 사모라는 상대에게 두들겨 맞아 골절상을 입어 재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여기에 스위스에서 사용한 리베로 시스템을 끌어온다.

비엔나 출신 라판이 처음 적용했다고 하는 이 시스템은 2-3-5 또는 W-M 시스템에서 양쪽 하프를 양쪽 백 뒤에 위치시킨 이후 양백을 센터백으로 활용, 예를 들어 상대가 왼쪽으로 들어오면 왼쪽 수비수는 공쪽으로, 오른쪽 수비수는 그 뒤를 커버하는 방식이다.

이 결과 수비할 때 항상 잉여자원이 하나 남았다.

이를 베로우어(verouller)라고 칭했고 후일 리베로(libero)라고 부르게 된다. 

 

경기는 11명이 하는 것이다.

이 말은 한쪽이 남으면 다른 쪽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W-M 시스템과 만날 경우 센터하프는 양쪽 공격수를 맡아야 했다.

2-3-5 시스템과 만날 때는 더 심해 센터하프 혼자서 좌우공격수와 센터하프까지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좌우 공격수는 뒤로 후퇴해 센터하프를 지원하게 된다. 

 

수비전술은 더욱 변화하게 된다.

센터백 두 명이 일직선상으로 서지 않고 앞뒤로 서게 된다.

1938년 스위스는 스텔저를 스위퍼로, 레만을 센터백으로 활용한다.

이전의 왼쪽 하프였던 왼쪽 플백은 뢰르처에게, 반대는 스프링어에게 맡긴다.

그리고 센터하프에 베르네티, 양쪽 공격수(좌우 미드필더)로 아베글렌과 와라첵이, 공격수는 윙에 그라시, 아마도, 센터포워드로 비켈을 활용한다.

이 스위스팀은 이전 32경기(게로컵)에서 3승 4무승부라는 참담한 성적에서 탈피, 1938년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은 2:1 승리를, 본선에서는 헝가리에게 2:0 패배를 했다. 

 

카테나치오를 발명한 사람은 지포 비아니라고 한다.

전설적인 이야기지만 어부가 예비그물을 준비하는 것에서 착안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신화화한 과장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카테나치오를 설명하기 전에 스위스를 말한 것은 이탈리아 역시 다뉴비언 스쿨(이 경우에는 스위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1930년대 이탈리아 대표팀을 맡았던 포초는 스위스 그라스호퍼 2군 팀에서 2년간 선수생활을 한 일이 있다. 

 

비아니는 일단 팀을 아래로 끌어내려 상대가 공격수를 늘리게 만들었다.

당연히 공격수가 늘어난 팀은 역습에 취약해진다.

이 발상은 1920년대 허버트 채프먼이 W-M 시스템을 만든 것과 비슷한 것이다. 

 

아무튼 비아니가 사용한 전술의 특징은 수비를 하다 보니 상대 팀은 윙이 물러난 것만 보이고 플백이 돌아들어가는 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이 카테나치오를 발전시킨 감독은 네레오 로코다.

이미 AC밀란을 강팀으로 만들었던 로코는 1947년 고향인 트리에스티나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당시 트리에스티나는 성적으로는 강등권이었으나 패전국의 특수성 때문에 강등을 면한 팀이었다.

그러나 이 팀을 로코가 맡은 이후 리그 2위, 8위, 8위를 차지하게 된다.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약팀에서 수비위주의 전술 시스템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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