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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축구이야기] 축구전술의 역사 - 마라카낭의 눈물 ①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2000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축구선수가 죽으며 말했다.

"브라질의 최고 형량은 30년이다. 그러나 나는 50년을 복역했다."

그의 이름은 바르보사.

1950년 브라질 월드컵 때 우르과이에게 역전패할 당시의 골키퍼였다. 

 

이번 이야기는 역대 최강팀으로 불리는 1960년대 브라질 대표팀이 만들어지기 직전까지의 상황이다. 

 

브라질 역시 19세기 후반 축구가 전해진다.

영국계 엘리트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축구는 벌써 1902년 리그가 도입 될 정도였다.

그리고 역시 패스 위주의 경기스타일이 주류를 이룬다. 

 

영국식 축구에서 브라질 축구로 갈라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당연하지만 현지인들이 축구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영국계 브라질 선수들이 경기를 하면 근처 지붕에서 구경을 하던 현지인들은 길거리에서 천뭉치를 갖고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길거리 축구는 경기장 안과는 다르게 개인기 중심이었고 누구도 이를 제지할 수 없었다.

이를 본 누구는 "스코틀랜드였다면 그런 광대짓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어찌됐건 브라질 특유의 스타일은 벌써 1919년에 생겼다고 보여진다.

상파울루의 잡지 '스포르투스'의 창간호에 '영국은 골대에 최대한 가까이가서 슛을 한다고 하지만 브라질은 어느 거리에서나 할 수 있고 다만 슛의 정확성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공격진 전체가 앞으로 전진할 필요 없이 두세명의 선수만 공을 가지고 돌파하더라도 워낙 빠른 속도에 상대 수비진 전체가 헤매게 된다.'는 뜻의 기사가 전해진다. 

 

그러나 그다지 국제적인 축구를 접하지 않았던 브라질은 1934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1대3으로 패배하며 탈락한다.

곧바로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에서는 4대8이라는 현재의 브라질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스코어로 패배한다. 

 

이후 브라질 역시 W-M 시스템을 도입한다.

그러나 이 W-M 시스템은 이탈리아의 메토도에 가까운 전술이다.

메토도는 1934년 포초에 의해 만들어진 시스템으로 센터하프 몬티가 하프와 백 사이에서 경기를 한 것이다. 

 

어찌됐든 1938년에 브라질은 이 시스템으로 4강까지 오른다.

그러나 5경기에서 3골의 패널티킥을 포함해 10골을 허용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오른쪽 하프를 볼란테(수비형 미드필더)로, 왼쪽 하프를 전진시킨 포메이션을 선보인다.

또한 오른쪽 공격수는 오른쪽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뒤로 물러났고 왼쪽은 제 자리에 있었다. 

 

이 시스템은 이름만 4-2-4이지 실제 미드필드를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초창기에는 직사각형으로 존재했던 미드필더(W-M 시스템과 흡사)가 평행사변형으로, 이후 다이아몬드형으로 진화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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