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축구의 분석이 있다.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골이다. 그러나 골을 위해 필요한 작업들을 위한 방식들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경기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뒷받침된다면 더욱 쉽고 정확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의외로 현대 축구를 위한 체계적인 분석법을 최초로 활용한 사람은 당시 소련(지금 우크라이나)의 로바노브스키(본명 ; 발레리 바실료비치 로바노우스키, Валерій Васильович Лобановський)다. 물론 선수로 FC 디나모 키이우(또는 키예프 ; FC Dynamo Kyiv)를 우승으로 이끈 능력도 있으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에 수학 금메달을 받을 정도로 수학적인 능력도 뛰어났다. 로바노프스키 당시 소련은 세계에서 수학이 가장 뛰어난 나라였다. 특히 키이우는 당시 소련 최초의 인공두뇌학 연구소가 들어선 곳이다. 로바노프스키는 키이우 폴리테크닉 연구소에서 열공학을 공부했다. 이 시기는 컴퓨터를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응용하기 시작하는 시기다. 1968년 여전히 빅토르 마슬로프(Viktor maslov)의 디나모는 리그타이틀을 획득했고 로바노프스키가 소속된 샤흐타르는 14위에 머물렀다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미헬스는 드디어 결론을 내린다. 전방에 4명의 선수가 있다면 공 소유에 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공격수 중에 한 명을 미드필드로 옮겼다.(4-3-3) 그리고 이것은 수비수 중에 한 명이 언제든지 올라갈 수 있으므로 3-4-3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 말은 수비수가 전진을 하면서 미드필드에 합류하는 틀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수비수가 전진을 하면서 압박을 했다는 점이다. 이 개념은 상당히 오랫동안 네덜란드에 남아 유능한 스위퍼를 배출하게 된다. 어느 사이 아약스의 수비라인은 전체가 상당히 올라 있게 됐다. 오프사이드 트랩이 강화된 것이다. 이 말은 상대의 공간을 줄이기 시작했다는 뜻이 된다. 브라질에게 당나귀라인이라고 비웃음을 받았을 때 크루이프는 남미의 기술을 넓은 공간에서 상대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 비웃음을 받는 오프사이드 트랩 때문에 브라질은 수비수 뒷공간에 넓은 침투공간을 알면서도 공을 패스할 공간을 차단하는 압박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네덜란드의 오프사이드 트랩은 압박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트랩은 상대 선수가 걸려 있게 되면 순간적으로 미드필드에서 맨오버가 이뤄지고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현대축구에 가장 영향을 미친 팀은 어디일까. 축구팬에게 강장 강렬한 인상을 끼친 팀은 1970년대 네덜란드 팀이다. 그리고 이 네덜란드는 아약스의 모습과 일치한다. 고리타분한 네덜란드가 자유분방한 네덜란드로의 변화, 그리고 이 변화의 핵심인 아약스 스쿨의 전술변화는 현대축구가 필요한 연령별 전술진화와 그 긍극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클럽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네덜란드의 축구는 영국식 스타일이 주류를 이뤘다. 콧수염과 빅토리아시대를 연상시키는 의상을 하고 있는 클럽의 사진을 보면 영국인지 네덜란드인지 혼동하기 쉬울 정도다. 네덜란드는 다뉴비언 스쿨을 제외하고는 가장 오래 피라미드 시스템을 사용한 팀이다. 문제는 이것이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네덜란드를 상대한 팀의 선수가 그렇게 넓은 공간이 생긴 적이 없었다고 감탄할 정도로 구태의연하고 성공적이지 못한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클럽의 변화가 1954년 제한적인 프로화와 1960년대 성장을 거쳐 1970년대 전성기를 맞았다는 것은 단순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 성장을 축구의 역사적인 사건과 연결지면서 읽어보면 어떻게 현대축구의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리버 마퀴나 또는 라 마퀴나(la maquina)라는 말이 있다. 1940년대 초반 리버 플라테의 경기를 보고 선수가 아니고 기계가 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 붙인 별명이다. 당시 아르헨티나에서 뛰었던 한 선수는 리버 플라테의 경기를 스탠드에 앉아 구경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아름답고 강했던 팀에게 붙여진 리버 마퀴나라는 별명은 낭만주의 시대의 잔영이라고 해야할까. 수십년동안 국제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던 아르헨티나는 1950년대에 재등장하면서 잉글랜드를 물리치고, 1955년과 1957년에 연속으로 코파아메리카컵을 들어 올리면서 세계 최고의 축구팀이라고 자부심을 갖는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이 자부심에 단 1년후 월드컵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만다. 첫 경기에서 전대회 우승팀 서독에게 1:3 패배는 그럴 수 있다고 보았다. 이후 북아일랜드에게 3:1 역전승에서 자신감을 되찾았으나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 만신창이가 된다. 1:6이라는 성적표보다 더 큰 문제는 상대에 대한 무지와 팀플레이의 실종이었다. 아르헨티나는 라누에스트라라고 표현되는 전술의 변화를 추구했다. 이 변화는 지지 않는 경기로의 전환이다. 1966년 월드컵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램지와 거의 비슷한 시각에 비슷한 생각을 해냈고 마슬로프는 램지보다 조금 일찍 양 윙을 뒤로 후퇴시키는 4-4-2 시스템을 발명한 것으로 생각된다. 소련이 서구와 단절돼 있다는 것과 램지가 자신의 팀을 만드는데 여론 때문에 시간이 필요했던 것을 감안한 생각이다. 여기서 후대의 사람들과 다른 점은 뒤로 물러난 선수의 창의력을 여전히 발휘하게 한 점이다. 또 하나는 플레이메이커의 중요성이다. 마슬로프는 1962년 브라질 팀에서 지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꿰뚫어 보았다. 또 하나가 지역방어다. 참고로 W-M 시스템에서 중요한 수비전술은 맨마킹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지역방어로의 전환은 수비진의 짜임새와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2002년 히딩크 팀만 해도 결국 지역방어로의 전환을 완결 짓지 못했고 현재의 K리그에서도 지역방어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있는 클럽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마슬로프가 난감해 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디나모는 쉴 세 없는 압박을 통해 경기를 풀어나갔고 당시 맞상대들은 기겁을 했다. 당시 사진기사의 제목은 '이런 식의 축구는 필요 없다'였다. 그 사진의 내용은 공을 잡은 상대 하나에게 4명의 디나모 선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한국축구에서 현재 가장 안티를 많이 갖고 있는 선수는 누구일까. 가장 많은 안티를 갖고 있는 선수는 아무래도 박주영을 꼽아야겠다. 이동국 역시 상당히 많은 안티가 있으나 그래도 현재 K리그(올해부터는 클래식이 더 붙음) 한국 국적의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2012년 26골)을 낸 선수다. 이에 비해 박주영이 국가대표에서 뛴다면 사실상 10명으로 경기를 치루어야 한다는 비판이 많다. 실제 박주영이 경기당 뛰는 거리를 계산한다면 포지션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짧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게으른 천재"라고 비판받는 박주영이 1950년대로 간다면 어떨까. 다른 선수에 비해 약 1.5배 수준의 이동거리를 자랑하며 가장 움직임이 많은 선수로 이름을 날릴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선수는 거의 걸어 다니는 느낌이다. 경기 중 선수의 이동거리가 길어진 가장 큰 원인은 압박이다. 요새의 눈으로 1950년대 헝가리나 1960년대 브라질 선수의 움직임을 본다면 볼을 끄는 느낌이 강하다. 이는 볼 컨트롤의 문제보다는 속임수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내주지 않는 형태로 경기의 경향이 변했기 때문이다. 압박을 하기 위해 수비수의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1969년 로마에서는 타콜라가 심잡음이라는 병에 걸려 있는 상황에서 삼프토리아와의 경기에 출전해야했고, 보름 후 칼리아리와의 원정을 대비한 겨울철 해변훈련에 참여를 시켰다.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타콜라는 경기가 끝난 이후 탈의실에서 쓰러져 사망한다. 이외에 원정팀 숙소에서 팬들이 소란을 떨어 원정팀 선수들이 잠을 못이루게 하는 것은 비일비재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오로지 이기기 위해 심판매수 등을 통해 승부조작을 했다는 의혹이다. 이미 유럽무대에서 이탈리아의 클럽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판정이 줄을 이어 심판매수 의혹은 있어왔다. 그리고 1974년 선데이 타임스에 심판매수의 증거들이 드러나게 된다. 라그란테 인테르의 종말의 원인은 그러나 이러한 추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칩거로 불리는 합숙훈련은 얼마간 경기력을 상승시킨다. 그러나 장기간 계속된다면 경기력의 급격한 하락을 몰고 온다. 1966-67시즌 셀틱을 만난 인터밀란의 상황은 심각했다. 당시 오른쪽 플백이었던 부르니크는 3시간을 잤고 이것이 운이 좋은 편이라고 자평했다. 그날 밤 그는 주장 피키(리베로)가 옆방에서 밤새도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강팀으로 적용한 케이스는 인터밀란이다. 당시 감독이던 포니는 오른쪽 윙인 아르마노를 밑으로 내려 상대 윙을 막게 한다. 아르마노는 후일 이탈리아에서 최초의 토르난티(tornanti, 귀환자들)라고 불린다. 토르난티는 원래는 윙이었으나 측면을 따라 내려와 수비를 돕는 윙을 말한다. 1952-53 시즌 인터밀란은 전년도 우승팀인 유벤투스에 비해 34경기에 득점은 27골이나 적은 46골을 넣었으나 단 24골을 잃었다. 1950년대 이탈리아 세리에A 우승팀의 평균 득점이 100골에 조금 못미쳤다는 점에 비해 8회의 1:0 승리와 4번의 0:0 무승부는 가히 "혁명적(브레라)"이었다. 유럽에 카테나치오를 알린 팀은 AC밀란이다. 의외로 로코가 이끈 AC밀란의 카테나치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부정적인 요소가 많지 않다. 1961-62시즌 우승팀 AC밀란은 당시 리그에서 두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린 로마보다 22골이나 많은 83골을 넣었다. 그러나 카테나치오는 오로지 이기기 위한 전술이라는 점에 변화는 없다. 1962-63년 시즌 유러피언컵에 나가 AC밀란은 악명을 떨친다. AC밀란을 상대한 팀 선수가 이 팀을 "머리 잡아끌기, 침 뱉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질문을 해보자. 축구팬에게 가장 싫어하는 전술은? 전세계 축구팬에게 가장 악명을 떨치는 이탈리아의 트레이드마크인 카테나치오다. 원래 이탈리아는 수비가 강한 팀이다. 1934년과 1938년 최초로 월드컵을 2연패할 때부터 이탈리아의 거친 수비는 정평이 있다. 당시 이탈리아의 전술은 메토도라고 한다. 2-3-5 시스템에서 센터하프가 앙쪽 사이드하프의 뒤에, 양쪽 백 앞에 서 있는 전술이다. 1회 월드컵(1930년)에서 아르헨티나 대표로 뛴 몬티라는 선수를 영입해 전술에 중심에 놓은 시스템이다. 이전에 유벤투스에서 사용했고 대표팀에서는 몬티를 영입하면서 이 자리를 맡긴 것이다. 1934년 월드컵에서는 무승부가 없이 무승부일 때는 다음날 재경기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탈리아를 만난 스페인은 첫날 무승부를 치른 이후 재경기에는 상당수 주전이 경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대표적으로 스페인의 골키퍼였던 리카르도 사모라는 상대에게 두들겨 맞아 골절상을 입어 재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여기에 스위스에서 사용한 리베로 시스템을 끌어온다. 비엔나 출신 라판이 처음 적용했다고 하는 이 시스템은 2-3-5 또는 W-M 시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사람들은 1966년 영국팀을 4-3-3 전형으로 싸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 영국 대표였던 노비 스타일스의 자서전을 보면 자신을 수비형 미드필더인 앵커맨으로 기술한다. 그의 앞에는 피서트, 찰턴, 그리고 볼이 공격시 헌트와 그리브스를 지원하게 했다. 최근 기술하기 좋아하는 4라인 시스템으로 굳이 해석한다면 4-1-3-2가 되는 것이다. 이 4-4-2 시스템은 약팀을 상대로할 때는 다시 4-2-4로 전환한다. 물론 조금 더 강하게 몰아갈 때는 2-4-4 시스템으로까지 진화할 수 있다. 그러나 램지는 보통 강팀과 맞서기 위해 윙을 후퇴시켰다. 포루투갈과의 4강전에서 스타일스가 에우제비오를 전담한다. 스타일스의 경기는 2002년 한국의 김남일 선수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램지의 영국은 기존의 영국 스타일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 팀이다. 가장 큰 차이는 이전 영국에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던 윙을 뒤로 물러나게 해 윙 없는 경기를 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1966년을 기준으로할 때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공 점유율이 높은 팀이었다. 세번째는 3명의 미드필더의 공격가담은 순간적인 맨오버를 이끌어 위험한 상황을 만드는데 충분히 일조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먼저 4-2-4 전술에 대해 부연한다. 이 전술의 부모는 피라미드시스템(2-3-5)과 W-M시스템이다. 먼저 4-2-4 전술이 2-3-5 시스템에서 진화한 것이 틀린 말이 아니다. 양쪽 하프가 뒤로 물러나고 센터하프가 앞에서 커버플레이를 하는 것이 2-3-5에서 직접 4-2-4로 전환한 팀에서 보여준 전술이다. 대표적인 예가 1960년대 브라질의 수비시스템이다. 수비시 양쪽 하프가 내려가서 지역방어를 하는 것이 4명의 수비이고 센터하프는 수비진 앞에서 커버플레이를 한 것이다. 공격시는 왼쪽 하프는 플백 위치에서 전진을 해 미드필드를 강화한다. 공격 역시 5명의 공격수 중 양쪽 스트라이커(8번과 10번)가 내려온다. 그리고 왼쪽 공격수는 공격진 바로 뒤에서 공격을 지원하며 자유로이 침투 및 패스를 한다.(펠레) 오른쪽 공격수는 수비시 더 물러나 센터하프위치까지 내려간다. 공격시 센터하프보다 앞에서 공의 운반을 돕거나 공격을 지원한다. W-M시스템은 기존의 2-3-5에서 센터하프(이탈리아에서는 달라짐)를 뒤로 내려 센터백의 역할을 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수비수 5명은 위치를 변화시킨다. 센터하프는 완전히 빠져 볼트시스템의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축구의 선은 무엇일까. 경기에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박진감이 있는 경기일까. 만일 최고의 기량을 갖고 있고 경기를 완전히 지배했으나 10백이라는 수비전술 속에서 단 하나의 기습에 당한 팀이 축구의 선에 도달했을까. 아니면 늪이라고까지 표현할 정도로 단단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한 골만 앞서면 잠그기에 들어가 이기기만 하면 될까. 1960년대 영국은 국제축구계에 복귀는 했지만 여전한 갈라파고스였다. 1960년 FC바르셀로나 감독이었던 에레라는 울버햄튼을 격파하면서 "영국축구는 진화단계가 빠져 있다. 오후 5시면 차를 마시는 것처럼 무엇이든 습관처럼 행동한다"라며 조롱한다. 1953년 헝가리의 아라니차파트에게 압도적인 경기력 차이로 진 영국에서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그러나 이것이 2-3-5 시스템으로의 회귀와 같은 방향성으로 가야 한다는 점이 문제다. 그래도 역사는 진보한다. 영국의 축구 전술 역시 진보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게다. 1950년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영국에서는 최초의 전술을 실험하여 성공한다. 짧고 긴 패스를 통해, 질서정연한 수비를 바탕으로 공격시 재빠른 위치변동을 통해 '맨오버(man ov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경기를 나가기 직전 페올라는 탈의실을 나가려는 지지를 붙잡고 다시 말한다. "명심해라. 첫 패스는 무조건 가린샤에게 보낸다." 20초후 가린샤는 공을 받았다. 상대 왼쪽 수비수가 다가오자 왼쪽으로 움직이려는 페인트 동작 이후 오른쪽으로 튀어나갔다. 몇차례 멈추고 속이고를 반복한 가린샤는 보이노프까지 제치고 좁은 각도에서 골대를 때르는 슛을 쏘았다. 1분후 펠레는 크로스바를 때렸고 다시 일분 후 지지의 스루패스를 받은 바바는 선취골을 만들었다.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3분이다. 1950년 우르과이에게 홈에서 패배한 브라질에서 8년간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1949년 브라질 원정에 오른 아스널은 어이없이 패배한다. 당시 아스널 플백 스콧은 "갑자기 한 놈이 달려들어 골대를 엄청나게 벗어나는 슛을 때렸다. 우리가 누군지 찾아봤지만 못찾았다. 다만 플백이 유유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브라질에서 플백의 전진은 더욱 중요해졌다. 앞의 공간으로 치고 나갈 수도 있었고 커버플레이도 가능한 시스템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맨투맨 수비를 버린 것이다. 맨투맨 수비를 버리자 수비진의 쏠림을 막을 수 있었다. 또한 두 명의 중앙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1950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브라질은 우르과이에게 패하지만 않으면 우승을 하는 유리한 위치에 섰다. 당시 우르과이 감독인 로페스는 브라질이 스위퍼 시스템을 사용한 스위스에게 고전한 것을 보고 백이었던 곤잘레스를 스위퍼 위치로 옮긴다. 결국 브라질은 우르과이의 수비벽에 고전하다 후반에 이르러서야 겨우 한 골을 넣는다. 그러나 우르과이는 미드필더까지 전진해 있는 왼쪽 백 비고데의 뒷 공간을 파고들어 역전에 성공한다. 월드컵 우승을 놓친 원흉으로 브라질은 '우연하게도' 3명의 흑인 선수(비고데, 주베날, 바르보사)가 지목된다. 바르보사는 죽을 때까지 이 시달림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 글 처음에 쓴 말을 남기고 죽는다. 하지만 1950년 브라질이 우르과이에게 패한 원인은 남미 팀과의 경기를 주로 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유럽스타일, 특히 스위퍼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점과 공격적으로 전진한 한쪽 플백의 뒷공간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아무튼 1941년 플라멩고와 플루미넨세의 시스템으로부터 1950년 브라질 대표팀, 1951년 빌라노바 등의 시스템을 볼 때 브라질에서는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2000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축구선수가 죽으며 말했다. "브라질의 최고 형량은 30년이다. 그러나 나는 50년을 복역했다." 그의 이름은 바르보사. 1950년 브라질 월드컵 때 우르과이에게 역전패할 당시의 골키퍼였다. 이번 이야기는 역대 최강팀으로 불리는 1960년대 브라질 대표팀이 만들어지기 직전까지의 상황이다. 브라질 역시 19세기 후반 축구가 전해진다. 영국계 엘리트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축구는 벌써 1902년 리그가 도입 될 정도였다. 그리고 역시 패스 위주의 경기스타일이 주류를 이룬다. 영국식 축구에서 브라질 축구로 갈라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당연하지만 현지인들이 축구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영국계 브라질 선수들이 경기를 하면 근처 지붕에서 구경을 하던 현지인들은 길거리에서 천뭉치를 갖고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길거리 축구는 경기장 안과는 다르게 개인기 중심이었고 누구도 이를 제지할 수 없었다. 이를 본 누구는 "스코틀랜드였다면 그런 광대짓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어찌됐건 브라질 특유의 스타일은 벌써 1919년에 생겼다고 보여진다. 상파울루의 잡지 '스포르투스'의 창간호에 '영국은 골대에 최대
문화저널코리아 = 조정일 기자 | K-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가운데 끊임없이 추구해온 한국 미술계의 아트페어가 오는 9월 1일 ~ 4일까지 인터컨티넨탈 호텔 서울 코엑스에서 제1회 K-아트페어로 열린다. 코엑스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10.11.12층)에서 열리는 K-ART FAIR는 82개 룸 70여 개 갤러리가 참여해 유명 작가 원작을 포함 미술작품 약 2,000점을 소개한다. 또한 특별전으로 20~30대 청년작가 공모를 통해 선정된 TOP 6 작가와 K-ART POWER 9 작가의 신작을 감상하고 소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청년작가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가 중 TOP 6 작가는 6백만 회원의 와디즈와 펀딩을 통해 작가를 홍보하고 작가의 원작과 한정 에디션 판화를 제작해 아트페어 오픈 전 사전 판매가 진행되며, 세계 미술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글로벌 작가의 발판을 만들어주고자 한다. 그 외, 순정 맨 작품으로 미소를 일으키는 김원근 조각 특별전과 미술시장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청년작가 탄산(TANSAN) 특별전도 펼쳐진다. 세계 미술시장의 통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시작된 K-아트페어는 "글로벌 탑 아트페어 ‘프리즈’와 국내 최대 국제 아트
문화저널코리아 = 이상수 기자 | 뮤지컬 마타하리 프레스콜 촬영 : 이상수, 편집 : 이상수
문화저널코리아 = 김한솔 기자 | 배우 이서환 인터뷰를 마련했다. 촬영 : 김한솔, 편집 : 이상수
문화저널코리아 = 이상수 기자 | 오는 5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동안 경상남도 양산시 황산공원 내 특설무대와 일원에서 ‘2022 양산 월드 힙합댄스 경연대회(World hiphop Avengers 2022 in YANGSAN)’가 열린다. 양산시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한국힙합문화협회 양산지부가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2024년 파리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선정된 브레이크댄스를 전략적으로 지원하여 세계대회를 개최함으로 힙합 분야의 특성화된 양산시의 브랜드 위상을 높이며, 지역문화의 우수성과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예술 행사이다.
문화저널코리아 = 아르디 이안 기자 | 오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동안 경상남도 양산시 황산공원 내 특설무대와 일원에서 ‘2022 양산 월드 힙합댄스 경연대회(World hiphop Avengers 2022 in YANGSAN)’가 열린다. 이번 경연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비보이 곤조와 너리원의 축하 영상을 보내왔다. 양산시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한국힙합문화협회 양산지부가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2024년 파리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선정된 브레이크댄스를 전략적으로 지원하여 세계대회를 개최함으로 힙합 분야의 특성화된 양산시의 브랜드 위상을 높이며, 지역문화의 우수성과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예술 행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