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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축구이야기] 축구전술의 역사 - 압박의 발견 ①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한국축구에서 현재 가장 안티를 많이 갖고 있는 선수는 누구일까.

가장 많은 안티를 갖고 있는 선수는 아무래도 박주영을 꼽아야겠다.

이동국 역시 상당히 많은 안티가 있으나 그래도 현재 K리그(올해부터는 클래식이 더 붙음) 한국 국적의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2012년 26골)을 낸 선수다. 

 

이에 비해 박주영이 국가대표에서 뛴다면 사실상 10명으로 경기를 치루어야 한다는 비판이 많다.

실제 박주영이 경기당 뛰는 거리를 계산한다면 포지션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짧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게으른 천재"라고 비판받는 박주영이 1950년대로 간다면 어떨까.

다른 선수에 비해 약 1.5배 수준의 이동거리를 자랑하며 가장 움직임이 많은 선수로 이름을 날릴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선수는 거의 걸어 다니는 느낌이다. 

 

경기 중 선수의 이동거리가 길어진 가장 큰 원인은 압박이다.

요새의 눈으로 1950년대 헝가리나 1960년대 브라질 선수의 움직임을 본다면 볼을 끄는 느낌이 강하다.

이는 볼 컨트롤의 문제보다는 속임수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내주지 않는 형태로 경기의 경향이 변했기 때문이다.

압박을 하기 위해 수비수의 움직임도 많아졌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공격수의 움직임도 늘었으며 미드필더의 움직임은 당시의 눈으로 본다면 가히 살인적일 정도다. 

 

현대의 대세인 압박이 처음 발견된 시기는 무척 오래됐다.

단지 적용된 것이 의외로 오래 걸렸을 뿐이다.

1990년대 독일에서 보이고 아리고 사키의 AC밀란만 해도 1980년대 후반이 돼서야 겨우 가능했다.

1970년대 아약스의 압박이 토털축구라고 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에 비해서도 무척 늦은 것이다. 

 

의외로 압박 시스템을 창안한 사람은 구소련(현재의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마슬로프다.

1964년 디나모 키예프의 성공을 이끌며 마슬로프는 구소련의 축구 중심을 모스크바에서 키예프로 옮기게 만든다.

디나모의 성공의 원인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선수를 모을 수 있다는 점이 상당히 작용한다. 

 

우크라이나의 공산당이 디나모 선수에게 준 혜택은 상당하고 한다.

여기에 마슬로프의 지도력이 함께하자 디나모는 단숨에 구소련의 최고 클럽으로 성장한다. 

 

당시 소련의 공산당의 입김은 모스크바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에서도 상당했다.

한번은 하프타임 때 당에서 찾아와 말을 시작하자 마슬로프는 "내일은 한가하니 찾아가 답해주겠소. 오늘은 이만 나가주시면 좋겠소."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할 정도로 강단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선수에게는 자상했다고 알려져 있다. 

 

마슬로프는 선수와 의논을 하고 선수의 생각을 물어가며 경기를 준비했다고 한다.

이미 소련은 파소보치카(시리즈 8) 시대부터 이미 4-2-4로 전술을 이행해 나갔다.

여기에 마슬로프는 브라질의 4-2-4의 핵심은 뒤로 물러나는 윙 자갈루가 핵심인 것을 파악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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