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속초 0.1℃
  • 흐림동두천 1.0℃
  • 흐림춘천 2.6℃
  • 흐림강릉 1.3℃
  • 흐림동해 3.1℃
  • 서울 3.2℃
  • 인천 2.1℃
  • 청주 3.0℃
  • 대전 3.3℃
  • 대구 6.8℃
  • 전주 6.9℃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제주 10.7℃
  • 구름많음서귀포 13.4℃
  • 흐림양평 4.3℃
  • 흐림이천 3.7℃
  • 흐림제천 2.9℃
  • 흐림천안 2.7℃
  • 흐림보령 3.0℃
  • 흐림부안 6.9℃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컬럼

[축구이야기] 축구전술의 역사 - 파시즘에 막힌 원더팀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1939년 1월 구스타프 하르트만은 아가니세에 어느 아파트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그 안에는 남녀 한쌍이 있었다.

그때 이미 여자는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고 남자는 하르트만이 발견했을 때 이미 죽은 상태였다.

그 남자의 이름은 당시 독일에게 병합된 오스트리아 원더팀의 공격수 마티아스 진델라르다. 

 

진델라르는 별명이 'der Papierene'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대체로 센터포워드는 상대 수비의 육탄방어를 뚫을 수 있는 당당한 체구의 선수를 선호한다.

진델라르의 등장은 센터포워드가 섬세한 타이밍, 감각, 연습한 것 위에 쌓인 창의적인 발상을 함께 갖는 선수로 진화했음을 뜻한다.

당시 진델라르를 평한 평가는 어떤 방식의 플레이를 할 지 예상할 수 없는 천재성을 지닌 선수라는 것이다. 

 

1920년대 닥터 게로컵에서 이탈리아에 이은 준우승을 거둔 유고 메이슬의 오스트리아는 이 천재적인 공격수, 진델라르를 선발하라는 압력에 시달린다.

이 압력 덕분에 진델라르는 1926년 국제무대에 데뷔를 했으나 메이슬은 처음에는 그다지 그를 중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31년경 메이슬은 진델라르를 붙박이로 쓰게 된다.

그 해 오스트리아는 스코틀랜드를 오대영으로 이긴다.

진정한 원더팀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원더팀은 영국에게 두번을 지며 다뉴비언 스쿨의 약점, 다시 말해 공격시 결정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그리고 1936년 메이슬은 드디어 영국을 이긴다.

이 경기에서 진델라르는 끊임 없이 상대 센터하프(센터백)를 끌어 내렸고 이 틈을 비집고 두 골을 성공시킨다.

그러나 이 때는 주전의 노쇠 등의 원인도 있지만 이탈리아에게 최강의 자리를 내어준 때다. 

 

이탈리아 축구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은 비토리오 포초다.

이탈리아가 축구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때는 파시즘 시대다.

적어도 포초는 파시스트는 아니었지만 또한 경기장에서의 포초는 파시즘을 이용했다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어쩌면 월드컵 역사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올바를 정도로 심각했던 대회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경기에서 스페인의 골키퍼 사모라는 처음 경기 이후 다음 날의 재경기에 나설 수 없을 정도로 얻어맞았다.

서너명의 스페인 선수가 부상 때문에 경기장을 떠나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이탈리아 월드컵은 폭력으로 점철된 대회다. 

 

4강에서 만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경기에서 진델라르는 몬티의 육탄방어에 저지당했고 엔리케과이타(이탈리아로 역이민 온 남미선수, 이탈리아는 이 대회에서 남미출신의 선수를 역이민해 대표선수로 활용했다.)는 공을 밖으로 차내는데 급급했다. 

 

이탈리아의 우승으로 끝난 이 월드컵에 대해 벨기에 주심 랑제뉘는 이기려는 의지 외에는 새겨야할 것이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망령이 월드컵 전체를 뒤덮고 있다고 평했다. 

 

1938년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합병한다.

사민당 지지성향이라고 밝힌 진델라르의 변사(사인은 일산화탄소에 의한 질식사)는 원더팀의 해체와 이기기 위한 전술로의 변화를 더욱 분명히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 아닐까. 

 

 

 

 

 

배너

CJK 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