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사람은 먼저 장면을 해석하려다가 이내 해석을 유예하게 된다.
무엇을 그렸는지보다, 무엇이 남는지를 더 오래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점과 입자,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색의 층, 우주처럼 열려 있으면서도 동시에 내면의 심연을 응시하는 듯한 화면. 작가 아델리(Adel Lee)의 작업은 명확한 형상이나 서사를 앞세우기보다, 설명보다 먼저 도착하는 감각의 잔향을 붙잡는 데 가까워 보인다.
서울 한남동 갤러리 몬트레아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Dear Unsame’는 아델리의 이러한 회화 세계를 보다 밀도 있게 만날 수 있는 자리다. 그리고 전시의 마지막 밤인 31일 오후 7시, 그는 관객과 직접 만나는 ‘Artist Talk’를 통해 작업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화면 안에 남겨온 사유와 감각을 풀어낼 예정이다.
최근 본지 기자와 진행된 인터뷰에서 아델리는 자신의 작업을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일이라기보다, 어떤 장면이 지나간 뒤 내 안에 남는 감각을 화면 안에 머물게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아델리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제게 중요한 것은 대상 그 자체보다, 그것이 남기고 간 감각입니다”
― 작업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결국 ‘무엇을 그리고 있느냐’인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스스로 무엇을 그리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저는 늘 그 질문 앞에서 조금 머뭇거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제 작업은 어떤 대상을 명확히 재현하는 데서 출발한다기보다, 그 대상을 통과한 뒤 제 안에 남은 감각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같은 풍경을 바라보더라도, 어떤 순간에는 형태보다 공기의 밀도가 더 오래 남고, 어떤 순간에는 색보다 정서의 결이 더 선명하게 기억되기도 하잖아요. 저는 그런 경험에 오래 머무는 편입니다.
그래서 작업을 할 때도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는, ‘무엇이 내 안에 남아 있었는가’를 더 자주 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는 보이는 장면 자체보다, 그것이 지나간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감각을 붙잡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제 그림이 우주처럼 보인다는 해석 역시 하나의 감각적 진입이라고 생각합니다”
― 실제로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우주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런 인상을 의식하시나요.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우주 같다, 별 같다, 심연 같다, 혹은 기억의 파편처럼 느껴진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저는 그 해석들이 모두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어떤 특정한 이미지를 정해두고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색과 층, 흔적과 밀도를 쌓아가면서 화면이 스스로 어떤 깊이와 확장성을 드러내는지를 지켜보는 편에 가깝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주적이거나 비물질적인 인상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그런 열려 있는 상태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우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감정의 심연으로 읽힐 수 있다면, 그건 화면이 각자의 내면과 접속하는 방식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화는 제게 설명의 언어라기보다, 머무름의 언어에 가깝습니다”
― 그렇다면 작가님에게 회화는 어떤 매체인가요.
“저는 회화를 대상을 설명하는 언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머무르게 하는 언어에 더 가깝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것들 중에는, 분명히 강하게 지나갔지만 말로는 잘 정리되지 않는 것들이 있잖아요. 감정도 그렇고, 어떤 날의 공기나 분위기도 그렇고요. 지나고 나면 정확히 이름 붙이기 어렵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아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제게 회화는 그런 것들을 너무 빨리 닫아버리지 않고, 열린 상태로 머물게 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말은 때때로 감각을 너무 빠르게 정리해버리지만, 그림은 그것을 조금 더 오래 흔들리는 상태로 남겨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점이 회화가 가진 고유한 힘이라고 느낍니다.”
■“저에게 재현은 복제가 아니라, 내면에 남은 감각을 다시 호출하는 일입니다”
― 이번 전시와 아티스트 토크의 키워드 중 하나가 ‘표상’과 ‘재현’입니다. 이 개념은 작가님의 작업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저는 그 문제를 작업 과정에서 굉장히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보통 재현이라고 하면 눈앞의 대상을 충실하게 옮겨놓는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제게는 그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저에게 재현은 어떤 장면이 제 안을 통과한 뒤 남긴 감정이나 인상, 기억의 결을 다시 불러오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그것이 내 안에 어떤 방식으로 남아 있었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회화는 저에게 외부 세계를 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면에 남아 있던 감각을 다시 호출하고, 그것을 시각의 언어로 옮겨오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화면이 저를 어디까지 데려가는지를 끝까지 따라가보려 합니다”
― 작업 방식도 궁금합니다. 화면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완성되나요.
“저는 처음부터 완성된 이미지를 선명하게 정해두고 작업하는 편은 아닙니다.
오히려 작업은 굉장히 열려 있는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색을 쌓고, 덮고, 지우고, 다시 남기고…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화면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싶어 하는지를 지켜보게 됩니다. 때로는 제가 처음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화면이 열릴 때도 있고요.
그런 순간들이 오히려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때 비로소 계산된 결과가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밀도 같은 것이 화면 안에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이제 더 건드리지 않아야겠다’ 혹은 ‘이제 이 화면 안에 어떤 생동이 생겼다’는 감각이 오는데, 저는 그 지점을 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 그림 앞에서 정답보다 각자의 감각이 먼저 떠오르기를 바랍니다”
― 관객들은 작품 앞에서 무엇을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관객분들이 제 그림 앞에서 꼭 어떤 해석의 정답을 가져가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자의 감각이 먼저 떠오르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오래 바라보다가 지나가실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기 안의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설명은 되지 않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지요. 저는 그런 반응들이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그림이 누군가에게 하나의 풍경으로 보이기보다, 자기 안에 오래 남아 있던 감각을 다시 꺼내보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꼭 이름 붙이지 않아도 괜찮고, 꼭 해석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잠시라도 자기 안의 감각과 다시 마주하는 시간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티스트 토크는 결과물이 아니라, 그 뒤에 있었던 시간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 전시 마지막 밤에 열리는 ‘Artist Talk’는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전시는 대개 결과물로 먼저 보이게 되잖아요.
관객분들은 완성된 화면을 마주하시지만, 그 이전에는 굉장히 많은 시간이 존재합니다. 오래 붙들고 있던 감정도 있고, 쉽게 설명되지 않는 과정도 있고, 망설임과 응시의 시간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이번 아티스트 토크가 그런 ‘보이지 않는 시간’을 관객분들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특히 전시의 마지막 밤이라는 점에서, 저에게는 더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작품을 다시 한 번 다른 언어로 열어보는 시간이기도 하니까요.
벽에 걸린 이미지로 보이던 것이, 작가의 언어를 통해 조금 다르게 읽히는 순간이 있잖아요. 저는 그 차이를 관객분들과 함께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말 뒤에 음악이 이어질 때, 작품은 또 다른 감각으로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번 행사에는 음악도 함께합니다. 첼로와 플루트, 그리고 디제잉이 이어지는데요.
“저는 그 구성이 굉장히 자연스럽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화면 역시 하나의 호흡과 리듬으로 읽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작업을 할 때도 저는 리듬감이나 호흡 같은 것을 중요하게 느끼는 편입니다. 어떤 화면은 긴 호흡을 필요로 하고, 어떤 화면은 아주 미세한 떨림처럼 남기도 하니까요. 음악도 비슷한 결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 같은 곡은 굉장히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안쪽의 울림이 깊잖아요. 그런 점에서 제 작업이 가진 밀도와도 자연스럽게 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로 어떤 감각을 설명한 뒤 음악이 이어지면, 작품이 또 다른 방식으로 다시 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감각은 언어보다 소리와 공간을 통해 더 오래 남기도 하니까요.”
아델리의 말은 반복해서 감각, 잔상, 머무름, 그리고 내면의 시간이라는 단어로 되돌아왔다.
그의 회화는 하나의 대상을 보여주는 데 머물지 않고, 그 대상이 지나간 뒤에도 내면에 남아 있는 정서와 공기의 결을 오래 붙잡으려는 태도 위에 서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무엇을 보여주는가’보다 ‘무엇을 남기는가’로 기억된다.
전시의 마지막 밤, 작품은 더 이상 벽에 걸린 이미지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의 목소리와 음악, 공간의 공기와 관객의 시선 속에서 다시 한 번 살아 움직이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보이는 것보다 그 뒤에 남는 감각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작가 아델리의 회화가 놓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