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5월의 뜨거운 햇볕이 내리꽂던 15일 정오, 경기 성남 판교역 광장은 거대한 외침으로 흔들렸다.
“대형 게임사도 참여하라!” “30% 수수료 구조를 끝내야 한다!” “디지털 식민지를 거부한다!”
평일 한낮, IT기업들이 밀집한 판교역 광장 한복판에 시민과 게임업계 관계자, 문화예술인들이 모였다. 이들이 함께 만든 무대는 단순한 산업 집회가 아니었다. 스포츠와 음악, 시민 발언과 퍼포먼스가 뒤섞인 하나의 ‘문화 선언’이었다.
이날 행사는 디지털 주권회복 시민위원회와 게임산업정상화 캠페인 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시민 문화 캠페인으로,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인앱결제 수수료 문제와 디지털 플랫폼 독점 구조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리기 위해 마련됐다.
무대 뒤편에서는 거대한 드래곤 탈을 쓴 퍼포머들이 땀에 젖은 채 움직였고, 광장 곳곳에서는 ‘내 돈 찾아오기 캠페인’, ‘유저 권리 회복’, ‘공정거래위원회는 누구를 위한 기관인가’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이 일제히 흔들렸다. 시민들은 폭염 속에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들은 단순한 관객이 아니라 시대적 질문의 증인이었다.
첫 연사로 무대에 오른 배재성 한강 YMCA 이사는 자신을 “36년간 KBS에서 스포츠 기자로 살아온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스포츠가 아니라 플랫폼 독점 구조를 향해 있었다.
“구글이 지난 4년 동안 인앱결제 수수료로 가져간 돈이 약 10조 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엄청난 부가가치가 해외로 빠져나간 셈입니다.”
그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이 사실상 ‘디지털 통행세’를 걷고 있다고 비판했다.
“요즘 고리대금도 20~30%면 제재를 받습니다. 그런데 플랫폼이라는 이유로 30% 수수료가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법적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왜 한국만 침묵하고 있습니까.”
그의 발언은 단순한 숫자 비판이 아니었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의 주권 문제이자, 플랫폼 경제가 만들어낸 새로운 권력 구조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날 광장의 분위기를 가장 뜨겁게 달군 순간은 송진우 전 한화 이글스 투수가 무대에 올랐을 때였다. KBO 리그 역사상 유일한 통산 200승 투수. 한국 프로야구의 상징 같은 인물의 등장에 시민들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그는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했던 프로토스 유저였다”며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은 진지해졌다.
“1999년 선수협을 만들 때 선수들은 불공정 계약 구조 속에 있었습니다. 계약서조차 일본식 한문 계약서를 그대로 쓰고 있었죠. 선수들이 제대로 이해도 못 한 채 사인을 했습니다.”
송 전 투수는 당시 선수협 창립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과 압박을 떠올리며 말했다. “결국 세상은 혼자 바꾸는 게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목소리를 낼 때 기득권 구조도 움직입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스포츠 경험담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날 플랫폼 독점 구조와 싸우는 게임업계와 시민사회에 보내는 연대의 메시지였다.
이어 무대에 오른 스마일메카 김지영 이사는 보다 직접적인 현실을 꺼내 들었다. “지난 10년 동안 구글과 애플은 독점적 지위를 기반으로 최대 30%에 달하는 수수료를 강제해 왔습니다.”
그는 이미 약 250여 개 중소 게임사들이 집단 조정 절차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대형 게임사들의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가장 어려운 위치의 중소기업들이 먼저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대형 게임사들이 나서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개발자들이 밤낮없이 만든 콘텐츠의 상당 부분이 플랫폼 수수료로 빠져나가는 구조 속에서, 산업 생태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의식이었다.

이날 캠페인이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한 규탄 집회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무대는 정치적 구호 대신 이야기와 음악, 상징과 예술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다.
사회자는 ‘숲속 동물들과 통행세를 걷는 용’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강을 건너려는 작은 동물들에게 과도한 열매를 요구하던 용이 결국 동물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다리를 다시 개방한다는 우화였다.
누구도 직접 설명하지 않았지만 시민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 용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이어 첼리스트 윤솔지의 연주가 광장을 가득 채웠고, 베이스 바리톤 김지석은 ‘청산에 살리라’, ‘희망의 나라로’를 노래했다. 클래식 성악의 울림은 산업 집회라는 공간에 예상치 못한 깊이를 더했다.
한편 무대 아래 시민들은 송진우 전 투수의 사인볼을 받아 들며 웃었고, 동시에 ‘유저 권리 회복’을 외쳤다. 스포츠와 예술, 산업과 시민사회가 한 공간에서 교차하는 장면이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이경일 사무총장은 ‘빅테크 기업의 디지털 식민지를 거부한다’는 제목의 선언문을 낭독했다. “지난 4년간 해외로 유출된 피해 규모는 10조 원에 달합니다. 환수될 배상금은 개발사와 이용자들에게 공정하게 돌아가야 합니다.”
그는 대형 게임사들에게 “침묵의 카르텔을 깨야 한다”고 촉구했고, 정부와 국회에는 보다 강력한 플랫폼 규제를 요구했다.
한국은 지난 2022년 세계 최초로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을 시행했지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자체 결제 시스템 중심 구조를 유지하며 법망을 우회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판교역 광장을 가득 메운 이날의 함성은 단순히 게임산업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플랫폼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던지는 질문이었다.
누가 디지털 세계의 길목을 지배하는가.
그리고 그 통행료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