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서울 대치동 대주회계법인 사무실 문을 열자, 정갈하게 정리된 장부와 차분한 공기가 먼저 맞이한다. 창가로 스며드는 빛 아래 계산기와 서류들이 질서 있게 놓여 있고, 그 한가운데서 이상엽 회계사(세무사)는 익숙한 하루를 이어가고 있다. 30여 년간 숫자의 세계를 지켜온 그의 일상은 겉으로 보기엔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분명한 기준과 방향이 축적된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상엽 회계사의 삶은 화려한 변곡점보다는, 오랜 시간 이어진 선택과 태도로 설명된다. 숫자를 다루는 직업 속에서도 그는 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았고, 그 질문은 그의 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기준이 되어왔다.
1962년 전북 완주군 봉동에서 태어난 그는 완주중과 전주고를 거쳐 상경,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당시만 해도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기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컸다.
“특별히 화려한 꿈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다만 ‘기본을 잘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대학 시절 그는 눈에 띄는 활동보다는 자신의 기초를 다지는 데 집중했다. 이 시기의 경험은 이후 그의 직업 선택과 삶의 태도에 중요한 밑바탕이 됐다.
졸업 후 그는 공인회계사와 세무사 자격을 취득하며 1989년 회계사의 길에 들어섰다. 숫자 하나, 기준 하나가 결과를 좌우하는 세계에서 그는 누구보다 엄격하게 자신을 관리해야 했다.
“회계는 결국 신뢰의 문제입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그것을 다루는 사람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원칙을 지켜왔다. 정확함, 책임, 그리고 일관성. 이 세 가지는 그의 업무를 넘어 삶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한 번 무너진 신뢰는 다시 쌓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의 삶에 조용한 변화를 가져온 계기는 1998년이었다.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이끌고 북한을 방문했던 장면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한 감동이라기보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 가까웠습니다.”
그 질문은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 그의 내면에 남아 있었다. 그는 그 시간을 ‘생각이 숙성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2011년, 그는 네이버 카페 ‘통일문화’를 개설하며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다만 그는 이 일을 ‘전환점’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설명했다.
“어느 순간 ‘이제는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결심이라기보다는, 미루지 말자는 판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모인 작은 공간이었지만, 그는 규모보다 방향과 지속성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처음부터 크게 하려고 하면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작더라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2020년, 그는 사단법인 출범을 결정했다. 조직이 커질수록 책임도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결정했습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 역할을 맡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본금 일부를 개인적으로 부담하며 조직의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 대해 특별히 강조하지는 않았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선택이었을 뿐입니다.”
2024년, 그는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을 찾았다. 오랜 준비 끝에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직접 가보니 생각보다 더 단순한 감정이 남았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느낀 것을 이렇게 정리했다.
“결국 사람은 비슷합니다. 환경은 달라도, 웃고 기뻐하는 모습은 같습니다.” 이 경험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더욱 단순하게 만들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상엽 회계사는 자신의 활동을 철저히 기록한다. 이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그가 지켜온 원칙의 연장선이다. “어떤 일이든 과정이 중요합니다. 기록을 남기고 정리하는 것은 책임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비용 처리와 운영에서도 엄격한 기준을 유지한다. “애매한 부분을 남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뢰는 작은 부분에서 결정됩니다.”
최근 그는 영화, 음악, 전시 등 문화 영역으로 활동을 넓혀가고 있다. 이는 사람들과 더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위한 선택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문화의 힘을 ‘경험’에서 찾는다.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가장 오래 남습니다.”
그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에도 세 번 도전 끝에 위촉됐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기회가 왔습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지속’의 의미를 다시 확인했다고 말한다.
“결국 끝까지 가야 결과가 나옵니다.” 인터뷰 말미, 그는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를 ‘지속’이라고 정리했다. “어떤 일이든 한 번으로 끝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작더라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 대치동 대주회계법인 사무실을 나서며 다시 한 번 그의 자리를 돌아봤다. 빼곡히 정리된 장부와 조용한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이어가는 한 사람의 모습은 특별할 것 없어 보였지만, 그가 지나온 시간만큼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이상엽 회계사의 삶은 거창한 전환이나 극적인 사건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매 순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해왔고, 그 선택들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왔다. 빠르지 않지만 멈추지 않았고, 크지 않지만 방향을 잃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 단순한 질문은 그의 삶을 움직이는 가장 분명한 기준이 되었고, 수십 년의 시간 속에서 흔들림 없이 이어져 왔다.
숫자를 다루는 회계사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그는 ‘정확함’과 ‘책임’, 그리고 ‘지속’이라는 원칙 위에 자신의 시간을 쌓아왔다.
눈에 띄지 않지만 분명하게 축적되는 시간. 그 조용한 축적이 만들어낸 하나의 방향. 이상엽이라는 이름의 삶은 그렇게, 오늘도 같은 자리에서 단단하게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