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막을 내린 제34회 동아국악콩쿠르의 진행과 심사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공론화하기 위한 간담회가 지난 2일 오후 6시 서울 서초동 브라움홀에서 열렸다.
![]() |
이번 간담회는 일반부 본선 무대를 직접 취재한 허영훈 기자의 100뉴스 칼럼을 보고 이와 유사하거나 더욱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진 콩쿠르 참가자들의 어머니들이 "제보할 내용이 있다"며 허 기자와의 면담을 요청했고, 이에 허 기자가 간담회 형식으로 공식적인 자리를 마련하면서 이루어졌다.
간담회에는 동아국악콩쿠르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 학생부 참가자들의 어머니들과 일부 참가자들의 소속 고등학교 전공교사, 전공실기강사, 그리고 언론사 기자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허 기자는 인사말에서 "우선 용기 내어 참석해주신 어머니들과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며, "개인적인 감정과 추측을 배제한 사실관계 위주로 청취하고 확인된 내용만 기사화하는데 언론이 함께 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80분간 진행된 간담회에서는 참석자들이 공통으로 지적한 문제들과 함께 녹취록과 SNS 화면 캡처 등 증거를 제시하며 언급한 내용들이 집중 공개되었다.
그 내용을 인용 또는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 심사위원과 이에 관한 주최측 태도의 문제다. 심사위원은 원칙에 따라 자신의 친인척이나 제자를 심사할 수 없다. 어머니들이 제시한 증거에 따르면 2명의 학생이 해당 심사위원의 제자였다.
이에 대해 일부 어머니들이 현장에서 동아일보사 관계자에게 이의를 제기했고 본사에 전화를 걸어 책임자와 직접 통화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최측은 "사전에 심사위원에게 확인했는데 사사(師事)관계가 아니다" "문제가 있으면 경연 후에 조치하겠다"는 대답만 하고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자 현장 관계자는 "해당 부문을 없애버려야겠다" "행패를 부린다" 등 어머니들에게 협박에 가까운 심한 말까지 했다는 것이다.
결국 학생부 예선이 그대로 치뤄졌고 금상, 은상, 동상이 주어지는 본선에 해당 심사위원의 제자 1명과 다른 학생 2명 등 단 3명만이 진출했다. 더욱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본선결과 금상과 은상이 없는 동상 1명만 발표되는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들의 문제 제기 이후에 발생한 결과라 의혹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한 어머니는 "의혹이 너무 커서 어쩔 수 없이 모든 예선 참가자들의 경연을 객석에서 녹음했다"며 허 기자에게 증거물로 해당 녹음파일을 전달했다.
둘째, 위에서 언급한 '사사'에 관한 문제다. 사사는 단발성 관계가 아닌 지도자로 모실만한 중요한 관계의 스승을 말한다. 동아국악콩쿠르 신청서에는 그 사사가 누구인지를 적는 공란이 있다. 당연히 참가자들은 그 공란에 스승들의 이름을 적는다. 당연히 스승들이 그 제자들을 심사하지 못하게 하는 공정한 심사의 1차적 장치가 된다.
그런데 문제가 된 심사위원의 제자는 사사를 적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를 인식한 어머니들은 주최측에 문의했고 동아일보사에서는 "적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 사실을 몰랐던 어머니들 입장에서는 사사임을 감추기 위한 사전에 의도된 조치가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품게 되는 부분이다.
셋째, 진행방식과 참가비 문제다. 해당 콩쿠르는 '온나라국악경연대회' 등과 달리 경연무대와 심사위원석 사이에 막을 치지 않는다. 심사위원들은 누가 나왔는지, 누구의 제자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심사간 특정 참가자를 떨어뜨리기 위한 소위 '디스'나 편파적인 심사가 가능한 환경에 직접 노출되어 있다는 의미다.
더욱이 문제가 된 해당 부문은 다른 부문과 달리 예선과 본선을 한번에 치뤘다. 주최측은 해당 부문은 '참가자가 소수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내놓고 있다. 당연히 참가자들은 본선까지 대비해 개인레슨을 받게 되고 연주자들을 섭외해서 수 차례 연습을 해야한다. 그렇게 콩쿠르 준비과정에서 드는 비용이 참가자 1명당 많게는 200여만원이라고 한다.
콩쿠르 참가비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무려 1인당 20만원이다. 학생부와 일반부 등 전체 참가비를 따지면 1~2억원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물론 전체운영비로는 부족할 수도 있는 금액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동아국악콩쿠르가 동아일보사의 사회공헌사업이 맞는지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넷째, 관리감독 소홀의 문제다. 주최측인 동아일보사, 장소를 제공한 국립국악원, 그리고 감독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당국은 콩쿠르의 전반적인 준비와 현장의 관리감독을 위해 과연 어떤 조치를 했는지 묻고싶다.
비리, 불공정, 안전사고, 현장문제 등에 대한 어떠한 사전준비와 대책도 없이 안일한 태도로 일관한 해당 기관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간담회 참석자들은 아래와 같은 요구사항을 전했다.
첫째, 콩쿠르를 주최한 동아일보사의 공식적인 해명과 진정성있는 사과를 원한다.
둘째, 콩쿠르의 공정한 심사와 합리적 절차를 위한 개선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불공정 심사에 관여한 심사위원의 심사자격을 영구 박탈해야 한다.
넷째, 국내 콩쿠르에 대한 여러 문제점들을 공론화하고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간담회 참석자들간 이어진 대화에서 한 참가자의 어머니는 "이번 문제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우리 아이들의 피해는 누가, 어떻게 보상해줄거냐?"는 말을 건네며 눈물을 보였고, 또 다른 어머니는 "사실 이 자리가 겁나고 무섭기도 하다"며, "이렇게 문제들을 드러내서 만약 해당 부문의 콩쿨이 없어지거나 학교에서조차 학생들을 기피하는 일이 벌어질까봐 두렵다"는 말을 전했다.
간담회를 마친 후 현재 모 고등학교에서 국악실기를 가르치고 있는 한 교사는 "예선에서 탈락한 이유가 정당하지 않다고 스스로 믿는 아이들이 현재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어서 수업이 불가능할 정도로 계속해서 상담시간을 갖고 있다"며, "계속 덮기만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일을 해야 할 때다"는 말을 덧붙였다.
국내에는 수 많은 분야에서 수 많은 콩쿠르와 대회가 매년 열린다. 그 때마다 비리나 문제점에 관한 소문들이 항상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일부는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루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경쟁의 공정함을 철저히 믿고 한계에 이를 정도로 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인 참가자들의 순수함이 결코 상처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동아국악콩쿠르에서 나타난 문제점에 대해 주최측인 동아일보사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며, 다양한 시각에서 오랫 동안 지적받아 온 국내 콩쿠르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점들을 이제는 정부와 사회가 직접 나서서 조사하고 개선안을 수립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