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 너머의 세계를 묻다… 부산현대미술관 어린이전 '코뿔소와 유니콘' 개최

  • 등록 2026.03.22 13: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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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는 끝났는데, 현실은 왜 더 어려워졌나"… 부산현대미술관 어린이전 '코뿔소와 유니콘' 선보여

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부산현대미술관이 옛이야기의 익숙한 질서를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읽어내는 어린이 전시 《코뿔소와 유니콘(The Rhinoceros and the Unicorn)》을 선보인다. 전시는 3월 21일부터 오는 7월 19일까지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실 2, 3과 극장 을숙(지하 1층)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보상과 처벌이 비교적 분명하게 작동하던 옛이야기의 규칙이 오늘의 현실에서는 더 이상 단순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전시 제목 속 ‘유니콘’은 권선징악의 질서가 명확했던 서사의 세계를, ‘코뿔소’는 그러한 질서가 해체된 채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오늘의 현실을 상징한다. 결국 전시는 “그리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결말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오늘의 어린이와 성인에게, 익숙했던 이야기의 문법이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가를 다시 묻는다.

 

전시에는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유럽권의 옛이야기에서 출발한 7인(팀)의 작가가 참여해 회화, 드로잉, 영상, 인터랙티브 아트 등 8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참여 작가는 이정윤, 창작공동체A, 추미림, 아야카 후카노(Ayaka Fukano), 발린트 자코(Balint Zsako), 주마디(Jumaadi), 마고즈(Magoz)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문화권의 설화와 민담, 동화를 오늘의 시각 이미지와 공간 언어, 그리고 책의 형식으로 새롭게 구성한다.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전시장 전체를 ‘글 없는 그림책’처럼 구성했다는 점이다. 관람객은 벽면의 설명문을 따라가는 대신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를 오가며 스스로 이야기를 조합하고 해석하게 된다. 전시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되며, 곳곳에는 작품과 작품을 은밀하게 연결하는 ‘이스터에그’가 숨겨져 있어 관람객이 지나온 장면을 되돌아보고 서로 다른 서사가 맺는 관계를 다시 발견하도록 유도한다. 수동적으로 설명을 받아들이는 감상이 아니라, 이미지 사이의 틈에서 각자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능동적 관람 경험을 제안하는 셈이다.

 

작가별 작업도 흥미롭다. 이정윤은 한국 설화 ‘바리공주’를 바탕으로 전시 공간을 책의 문법처럼 다시 엮어내며, 창작공동체A는 ‘토끼전’을 여러 시선이 공존하는 다성적 그림책으로 변주한다. 추미림은 ‘헨젤과 그레텔’의 빵 부스러기를 쿠키와 캐시의 개념으로 치환해 오늘의 디지털 환경을 비틀어 보여주고, 아야카 후카노는 ‘일촌법사’를 16개의 장면과 짧은 문장으로 재구성한다. 발린트 자코는 트란스카르파티아 지역 민담 ‘봉선화(Touch-me-not)’를 벽화와 참여형 이미지 배열로 풀어내며, 주마디는 라마야나의 결말부를 회화와 설치, 시적인 문장으로 다시 직조한다. 마고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출발점 삼아 시공간의 왜곡과 전복을 이미지의 리듬으로 구성한다.

 

이번 전시는 전시장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전시 후반부에 마련되는 ‘이야기 실험실’은 작가별 책과 아카이브 자료, 원천 서사를 함께 소개하며 관람객이 전시에서 이미지로 먼저 만난 이야기를 다시 읽고 사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작품 감상과 독서 경험을 연결하는 구조를 통해, 전시는 보는 일과 읽는 일을 하나의 연속된 경험으로 확장한다.

연계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배우 김재욱과 카사마츠 쇼, 가수 브로콜리너마저, 국악인 안정아, 성우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씨씨킴 등이 참여한 낭독 영상 콘텐츠가 마련돼 관람객은 이미지로 읽은 이야기를 다시 ‘듣기’의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또한 극장 을숙에서는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씨앗’과 협력한 상영 프로그램이 진행돼, 전시의 주제와 맞닿은 독립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야기의 정서를 또 다른 장면으로 확장해 만날 수 있다.

 

관람객 참여형 프로그램 역시 이번 전시의 중요한 축이다. 발린트 자코, 주마디, 마고즈 등 참여 작가들이 직접 진행하는 워크숍에서는 어린이와 가족 관람객이 전시에서 만난 장면과 이야기를 자신만의 상상과 창작으로 이어갈 수 있다. 수어 해설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돼 보다 다양한 관람객이 전시에 접근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보는 것에서 시작해 만들기와 참여로 이어지는 경험을 통해, 전시는 이야기가 관람객 각자의 손과 감각 속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강승완 부산현대미술관 관장은 “이번 전시는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의 다양한 문화와 서사를 통해 일상에 뿌리박힌 전통과 신념, 가치를 현재적으로 재해석하는 자리”라며 “동화와 설화가 현대 디지털 사회와 만나는 중간 지점에서, 관람객들이 인간과 동식물이 주인공이 되는 옛이야기의 이미지를 따라가며 저마다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부산현대미술관은 관람객 편의 증진을 위해 미술관 옥상에 비건 레스토랑 ‘리프(LYFF) 부산’도 새롭게 조성한다. 을숙도의 자연과 어울리는 ‘잎 요리’를 콘셉트로 한 100% 식물성 캐주얼 다이닝 공간으로, 오는 3월 27일부터 매주 월요일을 제외한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어린이 전시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상은 오늘의 세계를 살아가는 모두를 향한 질문에 가깝다. 옛이야기가 약속했던 분명한 질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대, 부산현대미술관은 ‘코뿔소’와 ‘유니콘’ 사이의 간극 속에서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하는지를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묻고 있다.

오형석 yonsei686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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