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통과한 공기까지 그린다"… 리안갤러리 서울, 김춘미 개인전 'Isobars in Down' 개최

  • 등록 2026.03.21 09: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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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갤러리, 김춘미 개인전 'Isobars in Down'개최… 공기와 신체, 색의 흐름으로 그려낸 회화의 현재
리안갤러리, 김춘미 전속 영입 첫 개인전… '보이지 않는 감각'으로 서울을 흔들다

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 리안갤러리 서울(회장 안혜령)에서 동시대 회화의 새로운 감각을 보여주는 김춘미의 개인전 'Isobars in Down'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 3월 19일부터 오는 4월 30일까지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진행되며,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작가의 첫 개인전이자 전속 영입 이후 처음 공개되는 전시라는 점에서 미술계 안팎의 관심을 모은다. 최근 런던과 뉴욕을 오가며 국제 미술계의 시선을 끌어온 작가가 서울 한복판에서 자신의 현재를 가장 밀도 높게 펼쳐 보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개막일인 3월 19일 열린 미술기자단 간담회에서 안혜령 리안갤러리 회장이 김춘미를 전속 작가로 영입했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안 회장은 이날 "김춘미는 동시대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가"라고 평가했다. 이는 단순히 유망 작가를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 동시대 회화의 다음 흐름을 함께 만들어갈 작가로서 김춘미의 잠재력과 확장성을 높이 산 발언으로 받아들여진다.

 

김춘미 역시 "리안갤러리 같은 훌륭한 공간에서 전시를 하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다"며 "이번 전시는 그동안 이어온 작업의 흐름과 최근의 새로운 시도를 함께 보여주는 자리"라고 밝혔다. 이 짧은 소감은 이번 전시의 성격을 정확히 드러낸다. 단순한 신작 발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해온 회화적 질문과 최근의 변화, 그리고 앞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한 자리에서 보여주는 중요한 분기점이라는 의미다.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핵심은 단순한 추상이 아니다. 김춘미는 풍경을 직접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공기, 기압, 계절, 몸의 떨림, 순간의 감각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를 화면 위로 끌어올린다. 전시 제목인 'Isobars in Down'은 '겨울 패딩 안의 등압선'이라는 낯설고도 강렬한 이미지에서 출발했다. 추운 작업실에서 두꺼운 패딩을 입은 채 작업하던 중, 작가는 자신의 몸이 옷 안의 공기 흐름 속에 놓여 있는 듯한 감각을 경험했고, 그 체험은 곧 회화의 언어로 번역됐다. 보이지 않는 대기의 흐름, 피부를 스치는 압력, 몸 안으로 들어와 흔적을 남기는 계절의 감각이 선과 색, 흔적과 리듬으로 치환된 것이다.

 

이 지점이 김춘미 회화의 힘이다. 많은 작가들이 풍경을 그리고 자연을 해석하지만, 김춘미는 그보다 한 걸음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 그는 자연을 재현하지 않고, 자연을 만났을 때 몸 안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상태를 그린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설명보다 먼저 감각으로 밀려온다. 화면 위에 펼쳐진 색과 선은 특정 장소를 직접 보여주지 않지만, 관객은 그 앞에서 바람의 방향과 공기의 밀도, 빛의 온도와 식물의 흔들림을 떠올리게 된다. 풍경이 아니라 풍경 이후의 감각, 장면이 아니라 장면을 스치고 간 정동이 작품의 중심에 놓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작가의 최근 회화 세계를 대표하는 작업들이 시선을 붙든다. 'Shared Stems', 'The Drive', 'Key in Landscape', 'Waterline' 등은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김춘미 회화의 특징은 단연 색과 속도다. 작가는 2023년 런던 개인전을 기점으로 원색 사용을 본격화했고, 흰색을 다른 색과 섞어 톤을 부드럽게 만드는 일반적인 방식을 의도적으로 멀리했다. 그 결과 그의 화면에서는 색이 탁해지지 않고 날것의 긴장과 선명함을 유지한다. 붉은색은 더 뜨겁고, 파란색은 더 차갑고, 초록은 더 날카롭다. 그러나 그 강렬함은 거칠게 폭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얇게 겹쳐진 색의 층과 빠르게 지나간 붓질 속에서 살아난다. 캔버스의 빛은 그대로 숨 쉬고, 화면 위 제스처는 풀잎처럼 흔들리며 특유의 리듬을 만든다.

 

김춘미 회화가 더욱 인상적인 이유는 화면이 완성된 결과물처럼 보이기보다, 막 어떤 사건이 지나간 자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선은 정리되지 않은 채 남고, 색은 다 덮지 않은 채 숨을 쉬며, 흔적은 일부러 지워지지 않은 상태로 머문다. 그래서 관객은 그림을 읽는 대신, 그림이 품고 있는 공기와 시간의 잔여를 감각하게 된다. 그의 화면은 꽉 찬 설명으로 닫혀 있지 않고, 오히려 열린 상태로 남아 관객의 감각을 안으로 끌어들인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춘미의 추상은 난해한 형식 실험이 아니라, 매우 직접적인 체험으로 다가온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주목 지점은 지하 1층에서 소개되는 '시-이(Si-i)'다. 이 작품에서 김춘미는 '그리기'와 '쓰기'의 경계를 본격적으로 밀어붙인다. 같은 동그라미라도 추상적인 원을 그릴 때와 한글 'ㅇ'을 의식하며 쓸 때의 감각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한 작가는, 선 긋기를 하나의 이미지 생산이자 동시에 신체적 기록 행위로 확장한다. 여기서 선은 단순한 형태가 아니다. 의미를 전달하는 문자가 되기 직전의 흔적이자, 몸이 화면 위를 통과하며 남긴 사건의 자국이다. 드로잉과 회화, 문자와 몸짓, 쓰기와 그리기가 교차하는 이 작업은 김춘미가 왜 지금 동시대 회화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김춘미의 작업 세계는 작가의 이력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김춘미(b.1983)는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영국 골드스미스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Isobars in Down'(리안갤러리, 서울, 2026), 'Ringing'(Paul Soto, 뉴욕, 2025), 'Dice'(N/A Gallery, 서울, 2025), 'Ship Snow'(N/A Gallery, 서울, 2024), 'ACID—FREEEE'(Ginny on Frederick, 런던, 2023) 등이 있다. 2023년 런던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 2024년 12월 미국 뉴욕 Paul Soto Gallery에서 개인전 'Ringing'을 선보이며 국제적인 활동을 본격화했다. 특히 런던 개인전 당시 마이애미 Rubell Museum 관계자가 작품을 소장한 데 이어, 비엔나 Leopold Museum 관계자 역시 작품을 컬렉션에 포함시키며 기관 컬렉션 차원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국제적 주목은 이번 서울 전시를 더욱 뜨겁게 만드는 배경이다. 해외 주요 전시와 기관 컬렉션의 관심 속에서 존재감을 넓혀온 작가가 국내 대표 화랑 가운데 하나인 리안갤러리와 본격적인 동행에 나서면서, 향후 국내외 미술시장에서의 행보에도 적지 않은 파급력이 예상된다. 이번 전시는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개인전을 넘어, 작가 김춘미의 새로운 국면을 알리는 상징적 무대로 읽힌다.

 

무엇보다 김춘미의 회화는 지금 한국 동시대 미술이 세계와 만나는 방식의 한 단면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서사를 과장하지 않고, 이미지를 과잉 생산하지 않으며, 최소한의 선과 색, 남겨진 흔적과 여백만으로 밀도를 구축하는 방식은 글로벌 미술계의 문법 속에서도 충분히 독자적이다. 화면은 적게 말하지만 감각은 오래 남고, 많이 그리지 않았는데도 오래 보게 만든다. 바로 그 '덜어냄의 힘'이 김춘미 회화의 경쟁력이다.

한편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Isobars in Down'은 단순히 한 작가의 신작 발표가 아니다. 그것은 몸과 계절, 공기와 압력, 감각과 회화가 만나는 가장 예민한 접점을 보여주는 전시다. 관객은 여기서 한 장의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설명되지 않는 어떤 상태를 통과하게 된다. 바람이 스친 자리, 공기가 머문 자리, 몸이 기억한 계절의 흔적이 어떻게 회화가 되는지 직접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고, 이제 리안갤러리 전속 작가로서 서울에서 본격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김춘미의 이번 개인전은 분명 놓치기 아까운 장면이다.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 여전히 한 장의 회화가 사람을 멈춰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전시.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감각까지 그려내는 회화의 현재가 지금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펼쳐지고 있다.

오형석 미술전문 기자 yonsei686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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