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교향악단, 모차르트와 브루크너로 잇는 '낭만의 서사'

  • 등록 2026.03.19 05: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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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교향악단, 봄의 문을 여는 낭만의 여정
모차르트의 투명한 서정에서 브루크너의 장엄한 세계까지

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계절은 언제나 음악보다 늦게 온다. 3월의 끝자락, 아직 공기에는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지만, 무대 위에서는 이미 봄이 시작된다. (재)KBS교향악단이 오는 3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제824회 정기연주회 '중세 독일의 낭만을 찾아서'를 선보이며, 고전주의의 마지막 빛과 후기 낭만주의의 장엄한 세계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낸다.

 

이번 공연은 독일-오스트리아 레퍼토리에 있어 독보적인 해석으로 평가받는 지휘자 마렉 야노프스키와, 세계 주요 무대에서 존재감을 확장하고 있는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이 함께한다. 두 음악가가 만들어낼 음향은 단순한 연주를 넘어, 서로 다른 시대의 감각을 교차시키는 ‘시간의 풍경’에 가깝다.

 

공연의 시작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다. 이 작품은 1791년, 모차르트가 생의 마지막 해에 완성한 곡으로, 그의 음악이 도달한 가장 투명한 순간을 담고 있다.

 

화려한 기교나 극적인 대비 대신, 이 협주곡은 놀라울 만큼 절제된 언어로 감정을 드러낸다. 1악장의 맑은 선율, 2악장의 고요하고도 깊은 서정, 그리고 마지막 악장의 담담한 생동감까지—모차르트는 이 작품에서 삶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음악으로 남겼다.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은 이 작품에서 단순한 협연자를 넘어 '호흡을 나누는 존재'로 기능한다. 그의 연주는 기교적 완성도보다 음색의 결, 호흡의 길이에 집중한다. 특히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가까운 악기로 불리는 클라리넷의 특성을 극대화해, 모차르트가 남긴 마지막 음악적 언어를 섬세하게 되살릴 것으로 기대된다.

 

김한은 이미 유럽 주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관악 연주자로서는 드물게 국제적 입지를 확립한 연주자다. 파리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수석으로 활동하며 쌓아온 경험은, 이번 무대에서도 고전주의 해석의 정교함과 현대적 감각을 동시에 드러내는 기반이 된다.

 

이어지는 2부는 안톤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4번 E♭장조 '낭만적'으로 채워진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이 작품은, 그의 음악 세계를 상징하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교향곡이 '낭만적'이라는 부제를 갖게 된 이유는 분명하다. 작품은 중세 기사들의 행렬, 깊은 숲, 새벽의 빛과 같은 이미지를 음악적으로 환기시키며, 하나의 서사적 공간을 구축한다. 그러나 이 음악의 본질은 단순한 묘사에 머물지 않는다. 반복과 확장을 통해 점층적으로 구축되는 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해소는 브루크너 특유의 ‘건축적 음악’을 형성한다.

 

야노프스키는 이러한 브루크너 해석에서 가장 신뢰받는 지휘자 가운데 한 명이다. 감정의 과잉을 철저히 배제하고, 악보에 충실한 구조적 접근을 통해 음악을 쌓아 올리는 그의 방식은, 브루크너의 본질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그는 긴 호흡의 프레이징과 균형 잡힌 음향 설계를 통해, 거대한 교향곡을 하나의 유기적 흐름으로 완성해낸다. 이번 공연에서도 과장 없는 절제 속에서 오히려 더 강한 긴장과 숭고함이 드러나는 해석이 기대된다.

 

이번 연주회의 가장 큰 특징은 '대비'가 아닌 '연결'에 있다. 모차르트와 브루크너—두 작곡가는 약 한 세기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음악적 본질에서는 깊이 맞닿아 있다.

 

모차르트가 음악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가장 투명하게 드러냈다면, 브루크너는 그 감정을 시간과 구조 속에서 확장시켰다. 전자가 '빛'이라면, 후자는 '공간'에 가깝다. 이번 무대는 이 두 요소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며, 음악이 어떻게 시간 속에서 변화하고 확장되는지를 체험하게 한다.

 

KBS교향악단은 이미 야노프스키와의 협업을 통해 독일 레퍼토리에서 높은 완성도를 입증해왔다. 과거 마스터즈 시리즈에서 선보인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공유하는 음악적 언어가 얼마나 정교하게 맞물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이번 공연은 그 연장선에서 한층 더 깊어진 해석과 사운드를 제시하는 자리다. 특히 고전주의와 후기 낭만주의라는 서로 다른 양식이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3월의 마지막 밤, 관객은 두 개의 시간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한쪽에서는 인간의 마지막 고백처럼 맑게 빛나는 모차르트가 흐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중세의 기억과 자연의 장엄함을 품은 브루크너가 울려 퍼진다.

 

이 대비와 연결 속에서 음악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이 된다. 그리고 관객은 그 안을 걸으며 각자의 감정을 발견하게 된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은 공기가 아니라 감각이다. KBS교향악단의 이번 연주회는 그 변화를 가장 섬세하게 포착하는 자리다.

 

봄은 아직 완전히 오지 않았지만, 음악은 이미 그 문을 열고 있다.

오형석 yonsei686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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