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저널코리아 오형석 기자 |시간은 흐르지만, 어떤 순간은 멈춘다. 그리고 그 멈춤의 지점에서 우리는 비로소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사회적 아티스트이자 ‘얼음작가’로 알려진 성서(SungSuh)의 개인전 《Frozenism: Frozen Portraits and World》가 오는 2월 13일부터 3월 13일까지 서울 갤러리한결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10년부터 15년 넘게 이어져 온 작가의 장기 프로젝트 ‘Frozen(ism)’의 집적된 시간과 기억을 한자리에 펼쳐 보이며, 개인과 자연, 사회가 맞닿는 경계의 순간을 사유하는 자리다.
전시 제목이 말하듯 《Frozenism: Frozen Portraits and World》는 단순한 인물 초상이나 시각적 실험을 넘어선다. 성서의 ‘얼린다’는 행위는 물리적 정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사라지기 직전의 시간을 붙잡는 시도이며, 감정과 기억이 응결되는 찰나를 기록하는 방식이다. 작가의 작품 속에서 얼음은 고정된 조형물이 아니다. 얼음은 녹고, 변형되며, 균열을 내고, 결국 사라진다. 이 과정 자체가 작품이자 메시지다. 기억과 감정이 그렇듯, 얼음 또한 끊임없이 상태를 바꾸며 유동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Frozen Portraits’는 인간의 얼굴과 감정을 다루지만, 초상의 전통적 정의를 거부한다. 인물은 개별적 정체성의 재현이 아니라, 시간과 감정이 응축된 하나의 상태로 존재한다. 차가운 얼음 속에 봉인된 표정들은 불안, 거리감, 돌봄, 책임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의 층위를 드러내며, 개인의 감정이 사회와 자연의 조건 속에서 어떻게 굳어가는지를 은유한다. 초상은 곧 세계의 단면이며, 개인은 결코 세계와 분리된 존재가 아님을 말한다.
《Frozenism: Frozen Portraits and World》의 또 다른 특징은 공간 전체를 감각적으로 활용한 몰입형 구성이다. 사운드와 빛, 얼음의 질감, 변화하는 오브제들이 어우러지며 관람객은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시간과 기억의 흐름 안으로 직접 들어가게 된다. 얼음이 녹는 소리, 빛에 따라 달라지는 표면, 서서히 변화하는 환경은 작품을 고정된 결과물이 아닌 ‘진행 중인 상태’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는 멈춤이 곧 정지가 아니라, 인식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성서의 ‘Frozen 프로젝트’는 2010~2011년 미국 시카고예술대학원(SAIC)에서 작품 논문으로 발표되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얼음을 시간과 기억의 매체로 체계적으로 활용한 이 시도는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작업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Frozen Nature and War⟩, ⟨Frozen Beings⟩, ⟨Frozen Face and Emotion⟩, ⟨Frozen Time and Memories⟩, ⟨Frozen History⟩, ⟨Frozen Languages⟩ 등으로 확장되며, 개인의 감정에서 사회적 기억, 역사와 언어의 문제까지 폭넓게 탐구해왔다. 뉴욕과 시카고, 벨기에, 독일, 서울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이어진 전시는 ‘Frozenism’을 하나의 개별 작품이 아닌 지속적인 예술적 실천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최근 동시대 미술계에서 얼음을 매개로 한 작업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지만, 이러한 흐름의 출발점에는 성서의 Frozenism이 있다. 얼음을 단순한 시각적 효과나 상징적 오브제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 감정과 사회적 조건을 기록하는 장치로 사유해온 그의 작업은 여전히 분명한 오리지널리티를 지닌다. Frozenism은 보존과 해체, 정지와 소멸, 생과 사의 경계에 대한 집요한 질문을 통해, 얼어붙은 세계를 응시하게 만든다.
성서의 작업은 개인적 서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얼음은 사회적이며 정치적이다. 환경 변화와 기후 위기, 점점 무뎌지는 감정과 타자에 대한 거리감은 작품 속에서 차갑게 고정된 상태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 멈춤은 무관심이 아니라 책임의 요청이다. 작가는 얼어붙은 순간을 통해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변화 앞에서 감정은 어떻게 멀어지고 있는지를 묻는다.
국제 무대에서의 평가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성서(SungSuh)는 다수의 글로벌 예술 어워드 수상과 국제 뮤지엄·도서관 소장, 학술적 발표를 통해 그의 작업이 지닌 사회적·문화적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왔다. 이는 Frozenism이 단순한 조형 실험을 넘어, 동시대 예술 담론 안에서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작업을 통해 개인과 자연, 사회가 서로 맞닿는 순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개인의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Frozenism: Frozen Portraits and World》는 멈춤과 응시의 순간을 통해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다시 성찰하도록 초대한다. 얼어붙은 초상 너머에서, 우리는 지금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차가운 침묵 앞에서, 무엇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