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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축구이야기] 축구전술의 역사 - 아약스 전성시대 ②

문화저널코리아 = 이기현 칼럼리스트 |   미헬스는 드디어 결론을 내린다.

전방에 4명의 선수가 있다면 공 소유에 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공격수 중에 한 명을 미드필드로 옮겼다.(4-3-3) 

 

그리고 이것은 수비수 중에 한 명이 언제든지 올라갈 수 있으므로 3-4-3으로 읽을 수도 있다.

이 말은 수비수가 전진을 하면서 미드필드에 합류하는 틀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수비수가 전진을 하면서 압박을 했다는 점이다.

이 개념은 상당히 오랫동안 네덜란드에 남아 유능한 스위퍼를 배출하게 된다. 

 

어느 사이 아약스의 수비라인은 전체가 상당히 올라 있게 됐다.

오프사이드 트랩이 강화된 것이다.

이 말은 상대의 공간을 줄이기 시작했다는 뜻이 된다.

브라질에게 당나귀라인이라고 비웃음을 받았을 때 크루이프는 남미의 기술을 넓은 공간에서 상대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 비웃음을 받는 오프사이드 트랩 때문에 브라질은 수비수 뒷공간에 넓은 침투공간을 알면서도 공을 패스할 공간을 차단하는 압박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네덜란드의 오프사이드 트랩은 압박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트랩은 상대 선수가 걸려 있게 되면 순간적으로 미드필드에서 맨오버가 이뤄지고 이것은 바로 공을 뺏어 선수의 숫자가 많은 상태에서 공격을 하게 되는 대단히 공격적인 전술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2002년 히딩크의 한국은 바로 이 전술로 상대를 당황시켰다. 

 

여기에 아약스가 네덜란드에서 강팀이라는 것은 또 하나의 전술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빠른 포지션의 이동이다.

디나모나 헝가리의 포지션 변화가 공격수는 공격수끼리, 수비수는 수비수끼리의 체인지였다면 아약스의 변화는 공수의 순간적인 포지션 변경이다.

이것은 상대의 밀집수비를 뚫기 위해 필요해진 것이다. 

 

4-3-3으로의 전술변화는 이를 더욱 강화시켰다.

최소한 한쪽 라인에서의 포지션 변경은  좁혀진 라인과 공수의 안정 속에서 확실히 수월해진 것이다.

특히 수비수가 전진을 했을 때 이를 커버하기 위한 움직임이 중요했다. 

 

이렇게 완성된 시스템은 미헬스가 바르셀로나로 떠나고 루마니아 출신 코바치가 후임으로 오면서 빛을 본다.

코바치는 엄숙했던 미헬스에 비해 너무 착했다. 

 

지나친 간섭에서 풀린 아약스는 하얀발레 이후 처음으로 유러피언컵을 세차례 거머쥔 팀이 된다.

뮤렌은 레알 마드리드와의 원정경기에서 크롤에게 패스를 하기 전 잠시 공으로 저글링을 한다.

마드리드와 아약스의 위상이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아약스는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4분만에 골을 넣고 이후 패스연결을 통해 한골만으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경기를 선보이고 유러피언컵에 입을 맞춘다. 

 

그러나 1년 후 1974년 월드컵에서 서독에게 똑같이 하다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아약스는 코바치가 떠나고 정신적인 지주인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급격하게 전성시대를 끝낸다.

또한 토털축구는 바르셀로나에게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역사상 최강팀을 셋만 꼽으라고 한다면 하얀발레(레알 마드리드)와 1958년 브라질 팀과 함께 1970년대 초반의 아약스를 꼽겠다.

이 세 팀 정도의 업적과 그 정도로 축구전술의 혁신을 가져온 팀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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